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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정조의 건축]상림십경 중 능허정

 

정조는 창덕궁 후원에서 아름다운 전경을 열 곳을 뽑아 시를 썼는데 마지막 열 번째 장소는 능허정(凌虛亭)으로 ‘능허 모설(凌虛暮雪)’을 지었다.

해가 쌓이고 쌓여 저물어 가는 하늘에(歲色?嶸欲暮天)/ 펑펑 내리는 가벼운 눈이 가련하구나(騷騷輕雪也堪憐)/ 잠깐 사이에 산하를 두루 뿌리고 가니(須臾遍灑山河去)/ 옥 같은 나무와 꽃이 앞뒤에 가득하구나(瓊樹琪花擁後前)

겨울의 어느 날 초저녁에 능허정에 갔더니 함박눈이 날리더니 잠깐 사이에 온 천지를 눈으로 하얗게 덮은 모습을 시로 표현하였다.

‘궁궐지’에 의하면 ‘능허정은 숙종 17년(1691)에 세웠다’라고 기록되어 300년 이상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능허(凌虛)는 위(魏)나라 조식(曹植)의 시 ‘칠계(七啓)’에 나오는 용어로 ‘허공에 오른다’는 뜻이 있다. 능허정 이름을 가진 정자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여러 곳에 있으며 보통 높은 곳에 자리하여 경치가 좋은 편이다.

숙종이 쓴 ‘제능허정(題凌虛亭)’ 시에서는 “백악산은 안개를 머금어 검게 보이고, 낙산에 해가 비치니 눈부시게 찬란하다.”고 하여 이곳에서 바라본 백악산과 낙산에 대한 느낌을 표현하고 있다. 또 숙종은 ‘능허각에 올라 멀리 충경공의 사당을 바라보다(登凌虛閣遙望忠敬公祠堂)’라는 제목의 시를 지었고, 순조도 ‘능허설제(凌虛雪霽)’에서 ‘도성의 나뭇가지…’를 노래하였다.

이처럼 이곳에서 만들어진 시들은 당해 능허정이 아닌 전망에 관한 것들이 많아 이곳은 멀리 조망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척뇌당을 노래한 숙종의 ‘척뇌당 사영(滌惱堂四詠)’의 시에는 ‘우뚝 솟은 능허각은 아스라이 작은 바위 같다’하여 능허정은 척뇌당에서도 잘 보였던 것 같다. 현재 척뇌당은 남아있지 않지만, 위치를 추정해 보면 ‘궁궐지’에서 세 연못의 동쪽에 새로운 정자를 세웠다고 하였으므로 ‘동궐도’를 보면 존덕정의 동쪽 즉 관람정의 뒤쪽 언덕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문이 없는 건물로 추정된다. 지금 이곳은 나무가 울창해서 들어갈 수 없고 존덕정이나 관람정에서도 주변에 나무가 많아 능허정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능허정은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 멀리 보이기도 하지만 후원에서 능허정이 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궁궐에서 임금의 생활은 화려하나 궁궐 밖으로 나가는 것은 보안 관계상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특별한 일이 아니면 외부에 나가지 못하기에 인생 대부분을 궁궐 안에서 생활하여 밖의 모습이 궁금했을 것이다. 그래서 궁궐 내부에서 가장 높은 곳을 선정하여 정자를 세우고 외부를 바라볼 수 있게 한 것이 능허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는 능허정의 주변 나무로 인해 외부가 보이지 않는다. 옛날에 임금들이 답답한 마음을 풀기 위해 만든 곳이 능허정으로 멀리 보는 전망대의 역할인데 지금은 아무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건물은 위치에 따른 용도가 정해지고 그에 맞는 이름을 지었는데, 이젠 그 의미는 어디 가고 덜렁 건물만 남아 자리만 지키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생긴다.

수원화성의 서장대는 장군의 지휘소로 그동안 나무에 가려져 능허정처럼 외부가 보이지 않고 외부에서도 서장대를 인식할 수 없었다. 하지만 수원시는 많은 반대에도 서장대 주변을 벌목하여 화성의 어느 곳에서도 서장대를 볼 수 있고, 서장대에서도 화성의 내부와 성곽 넘어 멀리까지 조망이 가능해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곳이 되었다. 수원화성 서장대처럼 능허정도 높은 곳에 위치하여 멀리 조망하던 곳으로 입지조건이 다른 건물과 달라 전망을 고려한 정비가 중요하다고 본다.

능허정은 현재 창덕궁의 관람 동선에서 빠져 관심을 받지 못하지만, 앞으로는 이곳도 개방하게 될 것인데 건물만 정비하여 보여주는 것보다 궁궐생활에 답답함을 느낀 임금이 올라와 멀리 궁궐 밖을 바라보면서 마음 달래던 곳이라는 것을 알려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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