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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정조의 건축]상림십경을 마치면서

 

정조는 창덕궁 후원(上林)에서 아름다운 경치 10곳을 선정하여 시를 지었다. 그동안 연재를 통해 건축가 입장에서 십경을 살펴보았고 글을 쓰던 도중 의문이 생긴 두 가지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 상림십경의 제작 시점.

상림십경에 대한 기존 논문 2편과 창덕궁의문화해설사 현장해설에서는 정조가 이 시를 지었을 때가 영조 43년(1767)으로 16살이라고 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출처는 모두 밝히지 않고 있어 이에 관한 자료를 찾아봤지만, 그 시기를 아직 찾지 못했다.

영조는 사도세자와 사이가 나빠지자 1760년부터 경희궁으로 거처를 옮기고 마지막까지 이곳에서 생활한다. 그리고 1762년 사도세자가 죽자,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헤어져 거처를 창경궁에서 영조가 있는 경희궁으로 옮겨 같이 생활하다 1777년 경희궁에 괴한이 침입하자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정조의 경희궁생활은 11살부터 26살까지로 15년간이었다.

상림십경을 지을 당시 경희궁은 임금이 정치를 하던 정궁으로 관리가 잘되고 있었을 것인데 왜 별궁인 창덕궁의 10곳을 선정하여 시를 지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리고 시의 내용 중에는 16살의 나이에 맞지 않는 글이 나온다. 소요정에서 옥류천의 이야기를 하면서 술잔을 돌리는 시를 적었고, 관덕정에서는 ‘군사들에게 함께 취해보고 싶구나’하고 노래하고 있다. 옥류천의 시는 술의 맛을 알고 풍류를 노래할 만한 연륜에서 나올 만한 내용이고, 관덕정의 시에는 제군들과 함께 취해보자는 것은 아무리 왕세자이지만 나이 많은 군인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 시를 쓴 시점은 16살의 청소년이 아니고 즉위 후 어느 정도 연륜이 쌓인 다음이라고 본다.

또 영화당에서 노래한 영화시사(暎花試士)는 춘당대에서 과거시험이 열리는 장면을 묘사했는데 당시는 경희궁이 정궁인데 굳이 이곳에서 시험을 치렀다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처럼 정조가 만든 상림십경은 경희궁에서 즉위한 후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긴 후 이곳이 다시 정궁이 되고 후원(상림)도 활성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상림십경은 정조가 즉위한 후 창덕궁 시절에 만든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그리고 시에는 4계절이 다 포함되어 있어 어느 한 시점으로 규정하면 안 될 것이다.

두 번째, 현재 건물에 대한 진정성.

상림십경에 나오는 건물의 변화는 순조 연간에 만든 ‘동궐도’를 보면 망춘정을 제외한 9곳이 나오고 1907년에 만든 ‘동궐도형’에는 소요정, 희우정, 청심정, 영화당, 능허정과 변형된 것으로 보이는 관덕정을 포함한 6개의 건물만 보인다. 그리고 100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와 같이 6개의 건물만 남아있다.

동궐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및 한국전쟁을 치르고,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많은 변형이 이루어졌겠지만 다행히 80년대부터는 원형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존하는 건물 중 관덕정, 영화당은 위계가 높았던 중요한 건물인데 지금은 위계도 낮고 마치 휴게 건물로 인지되어 진정성의 규명이 필요한 곳이다.

영화당과 관덕정은 과거를 통해 유능한 인재를 뽑는 중요한 시점에 국왕이 상주하면서 시험을 주관하던 곳으로 매우 중요한 장소였다. 무형적인 요소도 중요하므로 영화당의 벽사시설 및 춘당대의 복원과 관덕정의 역할을 위해 주변 환경 개선이 추진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능허정은 전망대(展望臺)로 임금들은 이곳에서 후원의 전경과 궁궐 밖의 전경과 더 멀리 인왕산과 낙산을 보면서 궁궐 생활의 답답한 마음을 풀던 곳인데 지금은 잡목 등으로 가려져 더는 전망대로서는 역할을 못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정조의 상림십경은 제작시점부터 재조명되어야 하고, 복원되지 못한 4개도 빠른 시기에 복원이 이루어지고 또 각 장소의 무형적인 요소에도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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