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한 빨간 장미 다발
/김금용
누가 던졌을까
살얼음 진 강물 속에서 동사한
얼어서 더 싱싱하게 빛을 뿜는
칼바람 속 유혹
저 장미는 나르시스에 빠졌을지 몰라
그대의 간절함이 고드름으로 매달려도
담 너머 지나가는 짓궂은 바람일 뿐이라고
어리석은 오만의 가시만 키웠을지 몰라
어디에도 꽂을 수 없었겠지
파묻어도 꼿꼿이 일어서는 언 강의 기억
차단된 얼음 속에 보관한 걸까
얼어서 더 붉고 싱싱하게 살아나는 장미다발
누가 던졌을까
- 현대시학 (2016년 4월호)
어떤 철학자가 말했지. ‘올바르게 보려면 두 번 봐라, 아름답게 보려면 한 번만 봐라’. 시는 직관의 산물이다. 물론 천착하고 천착하려면 몇 십번이라도 볼 수 있겠지만, 어떤 모티브에 의한 시상의 포착은 단 한 번의 직관으로 충분하다. 시인은 살얼음 진 강물에 던져진 꽃다발을 보는 순간 시적 아름다움의 핵을 낚아챈다. 얼어서 더 선명한 꽃의 유혹에 이미 포섭당한 시인의 마음은 이미 장미다발에 포개져 장미의 심상이 된다. 그리고 제 스스로 나르시스에 빠져 오만의 가시를 키우며 아무에게도 꽂을 수 없는 도도한 인격체가 된다. 그건 바로 우리 시인들 모두의 운명 아닐까? 세상이라는 강물에 내던져졌지만 우리는 거기 빠져 허우적거리는 게 아니라 동사한 감각적 층위와 인지적 층위를 최대한 깨워 얼어서 더 붉고 싱싱한 시의 꽃다발을 엮어내는 게 아닐까? 누가 던졌을까. 이 시의 다발을. 얼음 속에 보관하다가 언젠가는 발아할 시의 맹아(萌芽)를. /이정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