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김지훈
어느 날 우연히 우리는 같은 이름으로 다름 삶을 살게 되었다 ‘새벽’, 새벽은 미끄럼을 타거나 기울어졌다 폭염 속에 쏟아지는 새벽은 채울수록 갈증이 났다 우리는 그 갈증의 바다에서 ‘새벽’을 잃었다 채워도 차오르지 않는 것들을 ‘새벽’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너는 그것들이 가서 두렵다고 했고 나는 그것들이 와서 두렵다 했다 하늘도 바다도 잠시, 흔들리는 꼭두새벽이었다
- ‘시인시대’ 2016 신인상 당선작 중에서
올 가을에 기대되는 젊은 시인의 유쾌한 시 한편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김지훈 시인은 그 습작기나 시적 역량으로 볼 때 그의 등단이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시인은 당선작 중 다른 작품 ‘모던 타임즈’라는 시에서 “나는 무엇보다 내면의 침묵을 추구한다. 표정이 아니라 개성을 번역하려고 노력한다”라는 앙리 브레송의 언급을 인용했다. 내면의 침묵과 개성을 번역하려는 것이 시인의 입장인지 알 수 없지만, 시 ‘거울’에서는 같은 이름 다른 삶이라는 ‘새벽’의 침묵과 개성을 잘 번역하고 있다. 시인은 새벽을 갈증의 바다로 보았다는 것은 새 날은 더러 두려움으로 오기도 하고, 더러는 새 날이 물러감으로 다시 두려움이 되는 흔들리는 시간으로 보고 있다. 희망과 절망, 설레임과 두려움이 ‘새벽’이라는 거울에 ‘이질적(異質的)으로 나타나지만 그것은 낯 설은 시간 앞에 흔들리는 사람들의 풍경 다름 아니다. 오늘 새벽 거울에 나타난 나의 모습은 충만인가 결핍인가?, 희망인가 절망인가? 다르지만 하나로 겹치는 ‘새벽’의 상념(想念)을 이 시를 통해 다시 되뇌이게 된다. /김윤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