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25 (월)

  • 구름많음동두천 29.3℃
  • 맑음강릉 33.1℃
  • 구름많음서울 29.7℃
  • 구름조금대전 30.6℃
  • 구름조금대구 30.8℃
  • 맑음울산 31.3℃
  • 구름조금광주 30.5℃
  • 맑음부산 31.2℃
  • 맑음고창 31.0℃
  • 맑음제주 31.5℃
  • 구름많음강화 28.8℃
  • 구름조금보은 27.9℃
  • 맑음금산 29.4℃
  • 구름조금강진군 30.8℃
  • 맑음경주시 31.7℃
  • 구름조금거제 30.6℃
기상청 제공

[정윤희의 미술이야기]뒤틀린 죽음의 형상과 작품의 본질

 

한때 보고 즐거워하며 아끼던 그림이 있었지만 알고 보니 그것은 속임수에 불과했다. 그림 뒤의 실세는 관객들의 호감을 끌기 위해 요리조리 변장술을 부렸고, 눈요기가 주는 얕은 만족감에 취해 관객들은 그림 뒤 실세의 존재도 잊고, 심지어 자신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잊은 채 그림을 바라보며 즐거워했다. 역사에서, 예술작품 뒤의 실세는 종교인이었던 적도 있고, 왕이나 귀족이었던 적도 있었다. 명작들의 대부분이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이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주문제작한 것이라는 걸 알지만 화가가 발휘한 훌륭한 솜씨와 기교에 감탄하며 관객들은 그림 뒤에까지 집요하게 파고들기를 포기하고, 오히려 작품의 매력적인 자태에 자신욕구를 일시적으로 동화시켜 버린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회화란 일종의 스크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스크린을 사이에 두고 관객들과 생산자는 서로를 혹은 스스로를 기만하는 놀이를 벌인다.

작품을 사이에 두고 벌이는 아슬아슬한 가면놀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최근 우리 사회는 ‘국위선양’과 ‘국민들의 문화향수’라는 명분을 앞세워 문화예술 콘텐츠가 국민들을 어떻게 농락했는지를 확인했다. 암담한 현실은 비단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방정부에서도 같은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예술을 통한 복지’를 앞세워 문화예술 분야에 예산을 투입하는 절차와 방식은 예술작품 뒤에서 실제로 어떻게 힘이 작용하고 있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 해 중앙 혹은 지방 정부의 슬로건과 정책방향에 맞추어 문화예술 콘텐츠의 대략적인 내용과 색깔이 이미 윗선에서 정해져 버리고, 공공기관과 공무원들은 그에 세부적인 사항들을 더한다. 문화예술콘텐츠의 질과 방향에 대한 감시의 기능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러한 역할을 맡고 있는 인사들 역시 콘텐츠를 통해 자신의 이득을 챙기는데 익숙해져 간다. 첫 단추에서부터 예술가들은, 그리고 시민들은 이 시대에 어떠한 예술이 필요한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권리를 타인에게 빼앗겨 버린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예술가들은 이미 윤곽이 정해져 버린 사업이나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숙제를 마치기에 급급한 심정으로 생계를 해결하곤 한다. 2011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설립된 이래 이를 통해 일부 예술인들이 정부주도의 사업이나 프로젝트로서가 아닌 온전히 자신의 역량과 실적을 평가받아 기금을 받고 있긴 하지만, 이는 전체 문화예술 예산에서 극히 미미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구조에서 균형은 아예 무시된다. 많은 정책 입안자들이나 실행가들은 스스로 돈을 벌지 못하는 예술가들이니 타인을 위한 대의명분에 봉사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술가란 돈벌이만을 행하지 않고,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기만의 신념과 직관을 가지고 자기 작업을 하는데 얼마간의 시간이라도 할애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그러려면 이들에게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확보해주어야 한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촛불들을 바라보며 그동안 ‘공공을 위한 예술’을 자처한 수많은 콘텐츠들이 이들의 목소리를 얼마나 반영해왔는지를 반성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자크 라캉은 회화의 본질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강연에서 이 작품을 소개한다. 캔버스에는 두 명의 대사가 화려한 치장을 하고 위풍당당하게 서있으며, 그들 뒤로는 지구의, 시계, 각종 측정기구들과 서적, 악기 등 인류의 과학과 문명, 예술을 상징하는 온갖 물건들이 놓여있다. 하지만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두 사내도, 그들 뒤에 놓여있는 온갖 잡동사니들도 아닌 화면의 중앙에 생뚱맞게 그려진 괴상한 형체이다. 혹자들이 오징어 뼈나 바게뜨로 부르기도 했던 이 형상은 길게 늘어뜨린 해골이다. 15·16세기에 걸쳐 원근법을 역이용하여 사물의 형태를 길게 늘어뜨리거나 뒤틀리게 묘사한 ‘왜상’이 유행하게 된다. 라캉은 예술과 과학이 결합되어 버린 시대에 원근법의 질서를 따르지 않는 왜곡된 형상들이 오히려 진실을 내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두 명의 대사는 승자와 같은 포즈를 취하며 위세를 떨치고 있지만 그들의 희멀건 얼굴은 경직되어버렸고, 작품을 사선 방향으로 가로지르고 있는 뒤틀린 죽음의 형상은 생동하고 있다. 예기치 못한 곳에서 출몰하여 이성과 논리, 문명과 과학을 뛰어넘는 것이 바로 예술이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