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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정조의 건축]사도세자묘의 이장(上)

 

사도세자의 이야기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임금과 세자의 갈등, 비극적인 세자의 죽음 등은 대중의 눈길을 끌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영조는 2남 12녀의 자녀를 두는데, 첫째 아들인 효장세자는 9세에 죽고, 둘째이자 마지막 아들인 사도세자는 영조의 나이 41살에 태어나 많은 사랑과 축복 속에 자라게 된다. 영조는 경종이 죽자 본인만이 유일한 삼종(三宗, 효종·현종·숙종)의 혈통이기 때문에 종사를 이어갈 수 있다는 필연성을 언급하면서 등극을 하였고, 이를 통치의 수단으로도 사용하였다. 그렇게 삼종의 혈통을 중요하게 생각한 영조가 그 혈통의 맥을 지워버린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도세자는 영조의 큰 기대 속에 성장하지만, 오히려 큰 기대는 사도세자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시간이 갈수록 둘의 사이는 멀어져 가고, 결국에는 두 사람 중 한 명만 살아야 하는 갈림길에서 사도세자가 죽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영조 38년(임오년 1762) 윤5월 22일 나경언이 세자가 역모를 모의한다고 형조에 고발하면서 사건이 커진다. 세자가 정말 역모를 도모했는지는 모르지만, 사도세자는 매일매일 석고대죄를 하며 처분을 기다리고 다음달 윤5월 13일에 영조는 세자를 폐하고 자결을 명령한다. 이때 사도세자 나이는 28세이고 세손 정조의 나이 11살이었다. 이날의 기록을 보면 “세자는 영특하였으나 10세 이후에는 점차 학문을 게으르게 하고, 대리청정하면서 발작을 하고 사람들을 죽였다. (중략) 임금의 뜻에 맞지 않으나 다른 후사가 없어 나라를 위한 근심이 많았다”라고 적고 있다. 영조는 세자 마음에 들지 않지만 다른 후사가 없어 18년이나 참아왔는데 더 이상 결정을 미루지 못할 지경이 되고 후계에 다른 대안이 있어 영조의 결단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자 사도세자가 정말 죽음에 이를 정도로 나쁜 일을 한 건지 아니면 모함을 받아 일어난 일인지에 대해 논란이 생기는데, 그 시작은 사도의 부인인 혜경궁과 아들인 정조의 글에서 비롯된다. 정조가 묘소를 수원으로 이장하고 쓴 ‘현륭원행장’에서는 사도세자의 긍정적인 면과 어릴 때 영특하고 무술을 좋아하여 효종의 기상과 닮아서 용맹하였다 하였고 역적들과 맞서다가 희생되었다고 하여 아들의 입장이 많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에서는 사도세자가 영특하였으나 주변 궁인들이 경종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영조와 이간하고 그래서인지 세자는 성장하면서 영조의 사이가 멀어진다. 그리고 세자는 병이 있어 사람들 해치고 심지어는 아버지 영조를 해하려 하여 어머니인 선희궁이 직접 영조에게 ‘세자의 병이 깊어 바랄 것이 없으며 세손(정조)을 건져 종사를 평안히 하길 바라오니 대처분하소서’라고 하여 사도세자가 정신병에 걸리고 잘못을 많이 저질러 어쩔 수 없이 어머니 선희궁이 결정하였다는 것이다. 즉 본인과 친정은 사도세자를 죽음과 관계가 없다는 의미로 쓴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엇갈린 주장은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데, 정조의 맥을 잇고 있는 것은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의 저자인 이덕일이며, 다른 입장은 혜경궁 홍씨 맥을 잇고 있는 것으로 ‘권력과 인간’의 저자인 정병설이다. 무엇이 맞는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으나, 국가를 책임진 임금은 가족보다는 나라를 더 생각할 수밖에 없으므로, 영조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사도세자의 대안으로 세손인 정조가 없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정조도 이런 내용을 인지하여 아버지에 대해 더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사도세자의 장례기간은 보통 임금이나 세자가 죽으면 3~5개월 걸쳐 장례를 치르는 데 비해 2달도 안 되는 기간에 끝나고 만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묘는 모든 것이 부족하고 위치도 안 좋은 장소로 인지하게 되고 즉위하면서 묘의 이장할 생각을 하고 오래 기간 준비하여 조선 최고의 명당으로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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