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가르치면 ‘혼이 비정상’이 된다”라는 말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면서 현 대통령이 한 말이다. 그런데 이 정권은 지금까지 교과서의 집필기준과 내용이 무엇인지, 집필자가 도대체 누군지 철저하게 감춘 채 비밀작업으로 추진해왔다. 따라서 그동안 역사학자, 역사교사, 국민들이 반대하면서 공개를 요구해왔다. 의식 있는 국민들과 대다수의 역사학자들은 지난해 11월 국정화 확정 고시 이후부터 친일과 독재 미화 등 역사 왜곡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특히 집필자를 공개하지 않은 이른바 ‘복면집필’에 대한 우려가 컸다.
이런 논란 끝에 28일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과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 검토본을 공개했다. 중학교 역사 1·2, 고등학교 한국사 등 총 3종이었다.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 독재미화, 친일 성향 등 우려했던 내용이 들어있다. 공개된 현장검토본은 대한민국 건국 시기와 관련해 1948년 8월15일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대신 ‘대한민국 수립’으로 기술했다. 헌법 전문에 기술된 대한민국 수립일 1919년 3월1일을 전면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전문에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분명하게 기록돼 있는데도 말이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폄하하고 독립운동을 폄훼하며, 매국노 반민족행위자들의 친일 행적을 희석시키거나 미화한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무슨 말이냐 하면 1948년 대한민국이 수립됐다면 그 전에는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고 따라서 독립운동가들은 존재하지 않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쳐 투쟁했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계획 등은 자세히 언급한 반면, 친일파 청산, 제주 4·3학살 등 기존 교과서 내용은 대부분 사라졌다. 집필진도 그렇다. 근현대사를 전공한 현직 역사교수는 거의 없고, 소위 ‘뉴라이트’ 계열 인사가 다수 포함됐다. 국민들이 강력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교육계는 진보·보수할 것 없이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교총도 친일과 독재 미화, 건국절 등 교육현장 여론과 배치됐다는 등의 이유로 수용을 거부했고, 전교조도 헌법이 부정됐고 항일투쟁의 역사도 희석됐다며 즉각 폐기를 요구했다. 박대통령의 ‘아버지 효도용 교과서’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역사국정교과서화를 고집할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