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이 도래할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과 같은 예술 작품들이 있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과 프란츠 카프카의 ‘심판’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이십 여 년 전에, 대륙이 머금은 전운을 강렬히 예고한 작품들로 잘 알려져 있다. 그보다 120년 전에 파리에서는 도시 전체를 피로 물들인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났으며, 이후에도 여러 번 파리는 혁명과 내전을 거듭 치러야 했다. 이 역시 영민하게 포착하여 미리 신호탄을 쏘았던 예술가가 있었는데, 바로 신고전주의의 필두에 서있었던 자크 루이 다비드였다.
많은 이들이 다비드를 혁명의 예술가로 기억하는 이유는 그가 당시 파리의 정치적·역사적 정황을 정확하면서도 극적으로 그려냈기 때문이었다. ‘마라의 죽음’에서는 방금 전 살해를 당한 창백한 마라의 얼굴을 웃는 듯 하기도 하고 자는 듯 하기도 한 신비스러운 표정으로 그렸다. 마라의 장례 행렬의 선두에 있었던 이 작품은 혁명의 지도자였던 고인을 종교지도자 혹은 순교자와 같은 모습으로 보이도록 했다. 대중들이 잘 기억하고 있는 작품 중에서 ‘생 베르나르에서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도 있다. 이 작품에서는 유럽 대륙에 공화정에 대한 기대를 몰고 다니는 나폴레옹의 기세등등한 모습이 담겨 있다.
이처럼 다비드의 작품들은 역사의 정점에서 대중들에게 강한 호소력을 발휘했었지만, 이는 다비드가 지닌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그가 구사했던 화풍이 시대의 요구에 정확하게 부응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다비드가 공화정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건 사실이지만 공화정을 위해서만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었다. 그는 루이 16세 집권 시기 아카데미에서 활동을 시작해 이미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으며, 당연히 왕정을 위해서도 일을 했었고 혁명 이후 황제와 독재 권력을 위해서도 일을 했다. 그는 격동하는 프랑스의 정치적 상황에 재빠르게 대처한 예술가였으며, 다분히 기회주의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의 탁월함은 예술가가 지닌 신념을, 예술가가 밟아온 행보를, 때로는 인격까지도 뛰어넘을 때가 있다. 이후에 유럽 대륙에 밀어닥쳤던 대이변들을 생각해보면 다비드가 채택했던 주제와 기법들은 가히 천재적이었다. 다비드로 하여금 본격적으로 성공 가도로 달리게 했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는 고대 로마와 알바 왕국간의 전쟁을 다룬 작품으로서, 호라티우스 가(家)의 형제들은 조국의 승리를 위해 굳은 결연을 하고 있으며 자신들을 바라보며 슬퍼하는 여인들을 외면하고 있다. 루이 16세는 이 작품을 보고 애국심을 호소하는 작품으로 해석하여 왕정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위해 그 무엇이라도 희생할 준비가 각오되어 있느냐고 근대인들을 종용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 작품 이래 본격적으로 열풍을 일으키기 시작한 신고전주의회화는 장식적이고 화려했던 로코코 회화를 곧 대체시켜버렸다. 신고전주의회화는 그리스-로마 예술이 그랬던 것처럼 절대미와 완벽한 균형을 추구했으며, 보는 이로 하여금 이성을 일깨워서 기존의 질서와 가치를 깨고 나오라고 재촉했다. 이미 몇 세기 전부터, 절대왕정이 전에 없는 번영과 위세를 누렸던 와중에도 인간의 지식은 꾸준히 축적되고 왔었고, 이성에 대한 믿음은 확고해져만 갔다.
예술가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예언하고, 역사의 어떤 정점에서 무언가를 적중시켰다면 예술가의 재능을 최대치 발휘한 셈이다. 일단 정점을 지나고 나면 무엇이든 힘이 빠지게 마련이어서 예술가가 해낼 수 있는 역할도, 작품의 아우라도 그와 같이 된다. 적어도 나폴레옹이 통령으로 등극하고 통치의 절정에 다다를 때까지, 다비드의 영향력은 여전히 강력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곧 스스로 황제의 지위를 취하면서 많은 지성인들의 기대를 저버렸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에 덜미가 잡힌 다비드는 황제의 초상화를 계속 그렸다. 혁명 이전의 국왕들처럼 몸에 온갖 치장을 두르고 살도 통통하게 오른 나폴레옹을 담아내는 데에는 절제미와 균형미를 중요시했던 신고전주의 기법이 썩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이제 많은 예술가들이 신고전주의 회화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거듭되는 혁명과 내전 역시 새로운 양식의 회화를 요구했다. 파리가 피와 시신으로 범벅이 되기를 반복하자 인간 이성을 최고선이라 여겼던 사람들의 믿음이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