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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여행]세계문화유산 창덕궁 여행 1탄

 

 

 

서울에는 조선시대의 궁궐이 5개가 있다. 경복궁과 창덕궁, 그리고 창경궁과 덕수궁, 마지막으로 경희궁이 여기에 속한다. 이 5개의 궁궐 중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궁궐이 창덕궁이다. 오늘은 세계문화유산 창덕궁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창덕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유 중 하나는 궁궐의 배치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넓은 터를 평평하게 만든 뒤 지어진 궁궐이 아니라 자연의 지세를 그대로 살린 채 궁궐 건물이 들어서 자연친화적이면서도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라는 평을 받는다. 그럼 창덕궁 정문부터 여행을 떠나보자.

창덕궁에 입궁하기 위해서는 정문인 돈화문으로 입장을 해야 한다. 보통의 궁궐 정문은 궁궐의 중심건물인 법전, 즉 창덕궁 인정전과 남쪽으로 일직선인 자리에 위치한다. 하지만 창덕궁은 왼쪽 끝으로 치우친 곳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는 인정전 남쪽에는 종묘가 자리하고 있어 이를 피해 정문의 위치를 변경한 것이다. 돈화문은 앞에 널찍한 월대를 가지고 있다. 궁궐정문에 월대가 남아 있는 것은 창덕궁이 유일하다.

월대를 통해서 돈화문으로 입장을 해보자. 돈화문은 3칸 정문이 아닌 5칸 정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5칸 정문을 만들어놓고 굳이 양쪽 1칸씩 2칸은 벽으로 막아놓았다는 것이다. 궁궐을 지음에 있어 3칸 정문은 왕의 궁궐, 5칸 정문은 황제의 궁궐에서 보여지는 특징이다. 5칸 정문을 만들었다는 것은 황제궁으로서의 면모를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내제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중국의 사신들은 이 문을 통과할 때 5칸 정문으로 인식했을까? 아니면 3칸 정문으로 인식했을까?

돈화문을 통과해 궁궐 안으로 들어가면 궐내각사로 들어가기 직전 세계문화유산 표지석이 자리하고 있다. 표지석을 지나 궐내각사 영역으로 향한다. 궐내각사에서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규장각이다. 규장각은 정조임금과 관련이 깊다. ‘규장(奎章)’은 ‘임금이 쓴 글이나 글씨’라는 의미로 규장각은 임금의 친필 글씨와 서화 등을 모아놓은 곳이다. 한마디로 왕실도서관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조임금의 규장각은 도서관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왕의 자문기관으로서의 역할도 함께 함으로써 정조임금의 정책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곳이었다. 그래서일까? 정조임금이 처음 설치했던 규장각의 위치는 후원의 가장 아름다운 곳에 자리했다. 하지만 정조임금 사후에 왕의 자문기관의 성격은 사라지고 왕실도서관으로서의 기능만 남게 되었다. 지금의 위치에는 고종임금시기에 옮겨졌다가 최근에 다시 복원되었다.

다음은 선원전으로 향한다. 선원전은 왕의 어진, 즉 왕의 초상화를 모셔놓고 제사를 드리는 곳이다. 왕이 선대왕을 만날 수 있는 곳은 궐밖에 있는 종묘에서이다. 하지만 종묘는 궐 밖 행차라는 번거로움을 수반한다. 그래서 궐 안에서 수시로 선대왕을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는데 이것이 바로 선원전이다. 따라서 선원전은 신성한 영역이었으며 왕들의 정신적인 지주이기도 했다. 궐내각사에 자리한 선원전은 ‘구선원전’으로 알려져 있다. 옛날 선원전이라는 의미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현재는 왕의 어진이 없이 내부는 텅 비어있다. 왕의 어진은 신선원전에 모셔져 있다.

선원전을 지나 옥당으로 발길을 돌린다. 옥당은 홍문관의 별칭으로 청요직의 상징이다. 즉, 옥당은 출세가 보장되는 인재들이 모인 집이다. 홍문관은 경서와 사적의 관리 그리고 왕의 자문에 응하는 곳이었다. 홍문관은 사헌부, 사간원과 함께 ‘삼사’로 불리며 정치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한마디로 세종 시기의 집현전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홍문관 관원이 되려면 학문적 실력은 물론이고 인격 그리고 가문에도 허물이 없어야 했다.

실력, 인격, 가문의 허물까지 검증한 조선시대 홍문관 관원 선발, 이미 사라진 역사이건만 요즘 시기에 더 간절해지는 인재등용 방식이다. 사라진 옛 역사라 치부하지 말고 세계문화유산 창덕궁에서 나랏일을 운영하는 노하우를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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