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늦잠을 자고 집에서 쉬며 TV를 보고 있었다. 자막으로 긴급 뉴스가 나오고 있는데 인근 지역 건물 화재 소식이다. 일반인이 제공한 동영상인지 쌍둥이 통유리 초고층건물 사이로 연기가 올라가고 있었다. 소방서에서 설치한 안전 매트로 사람들이 뛰어내린다는 멘트도 이어졌다.
이 정도 대형건물이면 화재 초기에 자동으로 진화 조치가 되어 화재 여부가 외부에 드러나지도 않아야 하지 않을까 의아해하며 큰 사고가 아니길 마음속으로 기원한다. 하지만 이내 사망사고 소식이 전해진다.
이쯤에서 생각하게 되는 건 혹시 안전 불감증으로 인해 이번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는지 여부이다. 아니나 다를까 뉴스를 검색해 보니 ‘명백한 인재’, ‘스프링클러와 화재경보기 정지 상태’, ‘불 끄며 작업’ 등 우려했던 바가 현실로 표현되어 있다.
우리 지역은 이미 세월호 침몰 사고와 판교 환풍구 추락 사고 등으로 그 어느 지역보다 안전 문제에 대해 민감하고 이에 대한 대비도 충분한 줄 알고 있었는데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다. 조사 과정에서 사고의 전말이 드러나겠지만 아마 이번에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사고 예방과 안전 조치에 소요되는 비용, 작업 기간 동안 영업 중단으로 인한 피해 배상을 생각하면 일단은 안전을 무시하고 아무런 사고 없으리라 맹신하며 공사를 강행하게 된다. 좀 비용이 들어가더라도 안전한 작업장을 만들고 하자 없는 제품을 생산하도록 강제할 방법은 없을까? 만약 안전조치에 소요되는 비용과 이를 소홀히 하였다가 사고가 발생하여 물어줘야 할 배상금을 저울질한 결과 손해배상으로 지출해야 할 금액이 천문학적인 숫자가 된다면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이와 같은 사고의 반복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으로 아래와 같은 두 개 정도의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하나는 법원의 결단으로 이번 사건과 같이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고 대형 사고의 가능성이 큰 현장의 인명사고에 대해 일반적인 손해배상 금액보다 훨씬 더 많은 큰 금액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도록 판결하는 조치이다. 실제로 법원은 고의적 범죄, 부실 설계·시공·제작, 관리·감독상 주의의무 위반, 관리·감독기관 등의 담합·은폐·묵인 등이 관련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손해배상금을 대폭 증액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예를 들어 피해 금액이 같다 하더라도 일반 교통사고와 뺑소니 교통사고의 경우 형사상 처벌뿐 아니라 민사상의 손해배상금도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또 하나는 이러한 거액의 손해배상 책임을 제도화해서 법률로 기준을 정하는 조치로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라 한다. 가해자의 비도덕적·반사회적인 행위에 대해 일반적 손해배상을 넘어선 제재를 가함으로써 형벌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끼친 손해에 상응하는 액수만을 보상하게 하는 실손보상만으로는 예방적 효과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고액의 배상을 치르게 함으로써 장래에 유사한 불법행위의 재발을 억제하자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입법을 추진하는 단계에 있다. 이 제도를 시행하는 미국에선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거액의 재판이 진행되곤 하는데 현대자동차의 사례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미국에서 10대 소년이 운전 중에 사망한 사건으로 현대자동차에게 7천3백만 달러(759억)이라는 엄청난 손해배상 금액이 부과되었고 이후 계속 상급심 재판이 진행되었다. 현지 법원은 조향 너클 등의 차량 결함의 지속적 문제 제기에 결함을 적극적으로 시정하지 않은 것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한 것으로 최초에는 무려 2억4천만 달러(한화 2천495억 원)의 징벌적 손해배상 판결이 내려졌던 사건이다.
세월호 관련자나 판교 환풍구 책임자들 모두 엄벌 되었듯이 이번 화재사고의 책임자들도 형사처분을 각오해야 한다. 또 안전불감증에 빠진 관련 회사들에 대해선 인, 허가에 관해 엄한 제재가 가해져야 한다.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조치뿐 아니라 사고 경위에 대한 철저한 조사 및 재발방지에 필요한 백서까지 상세한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