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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산책]일찍이 나는

일찍이 나는

/최승자

일찍이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 가면서

일찍이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 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 최승자 시집 ‘이 時代의 사랑’ / 문학과지성사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말은 역설적으로 읽힌다. 무엇인가 되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했다는, 그러나 실패와 낙담 끝에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린 극도의 외로움이 숨어있다. 세상일이란 게 대개는 뜻대로 되지 않으므로, 그럴 때 몰려오는 자학의 무게란……. 좌절이라는 괴물은 영혼의 피폐는 물론 존재자체를 부정하게 만든다. 필사적이었던 만큼 무가치하고 비천한 것으로 치환시킨다. 그렇게 해서 벼룩의 간만큼이라도 위로가 된다면……. 살아있음이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너, 당신, 그대, 사랑’ 그리고 ‘행복’에 목마른 자여! 한 번 더 시작해 보자. 한 번만 더 필사적이 되어보자.

/이미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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