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전 의원은 대쪽 이미지로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2002년과 2007년 대통령에 출마했으나 패배했다.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아들의 병역문제 때문이었다. 남북이 분단돼 총구를 서로 겨누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병역은 가장 민감한 문제다.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들은 늘 병역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한민국의 건강한 청년들이라면 통과의례처럼 거쳐야 하는 병역이지만, 나이 50이 넘어서도 재징집되는 악몽을 꿀 정도로 고통스러운 의무다. 그래서 일부 특권층들은 여러 가지 술수를 부려 자식들의 병역을 회피시킨다. 이렇게 군대에 징집된 자식들의 무사를 위해 부모들은 밤낮없이 가슴을 졸여가며 기도한다.
하지만 세상에 둘도 없이 귀한 아들이 의문사를 당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오는 순간 부모는 정신줄을 놓아버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국가는 그 비통함과 억울함을 위로해주고 보상해주지 않고 사망원인을 자살이나 음식으로 인한 질식사라고 발표한다. 한 해 평균, 27만여 명의 청년들이 의무 복무를 위해 입대하고 평균 150여 명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데 군 당국은 이 중 100여명 정도가 이해할 수 없는 사정으로 자살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선임병들의 구타나 총기발사로 숨졌는데도 말이다.
허원근 일병의 경우 1984년 양쪽 가슴과 머리에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는데 자살이라고 발표했다. 자살하는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머리와 가슴에 총을 세발이나 쐈다는 얘긴데 이걸 누구보고 믿으라는 얘긴가. 어이없는 군당국의 발표에 유가족들은 국방부를 상대로 진실규명을 요구하며 힘든 싸움을 이어오고 있다. 이에 노무현 정부 때인 지난 2006년 ‘대통령소속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진정된 600건의 군 의문사 사건 조사가 채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예산 낭비’ 운운하며 강제 해체시켰다. 어떤 경위로 죽었는지 밝혀 달라는 유가족들의 애처로운 소원조차 들어주지 않았던 이명박 정권이었다.
그런데 지난 26일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군 입대 후 사망 장병들의 유가족 치유연극인 ‘이등병의 엄마’를 관람하면서 내내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이에 주최 측은 “군 유족이 받은 최초의 국가적 위로”라고 고마워했다. 문재인 정부가 해결해야 할 일이 산적해있지만 국가의 부름을 받고 간 군대에서 의문사한 젊은이들의 원한을 풀어주는 일 또한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