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품출어인품(詩品出於人品)’이란 말이 있다. “글의 품격은 그 사람의 품격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말은 곧 말한 이의 인격 그 자체”라는 의미도 된다. 좋은 말을 하는 이는 선하게 보이고, 나쁜 말을 하는 이는 악하게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말 하는 것만큼 어려운 게 없다. 세상 살아가는 모든 변화의 출발이말이어서 더욱 그렇다.
그러다 보니 세 치 혀가 내뱉는 말이 세상을 시끄럽게 할 때가 많다. 망언, 막말, 식언(食言)등이 대표적이다. 그중 일본이 밥 먹듯 내 뱉는 역사왜곡 발언을 비롯 우리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의 보편적 가치기준에 크게 벗어난 발언으로 대변되는 망언이 등장하면 우리사회는 예외 없이 공분에 휩싸인다. 사전적 의미인 ‘이치나 사리에 맞지 아니하고 망령되게 하는 말’이란 표현처럼 국민들의 염장을 질러서다.
그런가 하면 막말은 권력의 우열관계에 의한 ‘갑질’에서 쉽게 나타난다. 얼마 전 국내 대형 제약사 사장이 운전기사에게 폭언에 가까운 막말을 일삼다 국민에게 사죄한 사건에서 보듯 막말 또한 가진자의 횡포로 치부돼 국민들을 짜증나게 한다. 얼마 전 국민의당 수석부대표인 이언주 의원이 급식 조리원등 파업 노동자를 향해 미친×들 이라고 표현한 것도 마찬가지다. 비록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학교급식노동자 파업과 관련해 부모들의 격앙된 분위기를 기자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사적인 대화가 몰래 녹음돼 기사로 나갔다면서 변명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 뿐인가? 지역구 수해를 외면 한 채 외유를 나갔다 ‘레밍’ 발언으로 국민적 지탄을 받은 충북도의원 또한 도저히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그런데도 일부 잘못을 언론 탓으로 돌리는 등 파렴치한 행동과 말을 이어가 국민을 더욱 참담하게 만들었다. 모두 사적이든 공적이든 말이란 입에서 흘러나온 뒤에는 돌이킬 수 없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증명한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사례는 빙상의 일각이지만….
‘말’은 개인 소유물이 아니다. 사회 구성원들의 소통을 위해 정신적, 문화적으로 학습되고 축적된 자산이다. 사회규범에 따라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에서 개인이 사용해야하는 언어의 품격도 달라야하는 법이다. 더구나 막말은 언어폭력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상대방에게 저속이나 폭언 등을 통해 열등감 또는 모욕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사회지도급 인사들이 이러한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는 것은 제도가 부여한 자신의 처지를 잘못 알고 행하는처신이며 자격이 의심되는 부문이다
우리 사회는 망언이나 막말에 대해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보편적인 기준에 어긋나는 말을 했을 때, 공평과 평등성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말을 했을 때 가혹하고 냉정하게 심판을 한다. 세치 혀가 내뱉은 망언이나 막말에 대해서는 용납하지 않는다. 사회의 가치체계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그럼에도 요즘 우리사회에선 상대방에 상처를 주는 말들이 이 홍수처럼 넘쳐난다. ‘욕’과 비난도 일상처럼 난무하고 있다. 이처럼 대안도 없이 도처에 막말이 넘쳐나는 건 무척 불행한 일이다. 막말은 갈등과 분열, 그리고 깊은 상처를 재생산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는 주범이어서 특히 그렇다.
예부터 세치 혀를 잘 다스리는 게 지혜라 했고, 다양한 의견의 공존, 건설적 비판과 생산적 토론, 이를 통한 타협과 절충의 도출이라는 민주주의의 프로세스도 말로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은 남녀, 노소, 진보와 보수등 어느 계층 어느 환경 가릴 것 없이 막말과 비방, 험담을 수시로 들을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 슬픈 일이다.
막말과 욕설로 대변되는 언어 폭력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부작용은 참으로 심각하다. 특히 상습적인 폭언은 질병으로 분류 할 정도로 사람에게 미치는 악영향이 크다. 최근 캐나다 세인트메리대 연구팀은 43세 간병인 55명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혈압 측정을 한 결과, 직장 상사로부터 불쾌한 말을 들으면 그 순간 혈압이 올라가는 것은 물론 퇴근 후, 심지어 자고 일어난 다음 날까지 혈압이 올라간 상태로 유지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을 정도다. 피해자에게 일시적으로 주는 스트레스 수준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고혈압·심혈관계 질환, 우울증, 화병 등의 위험을 높이는 원인으로 작용 하는 셈이다. 삼사일언(三思一言·세번은 생각하고 말하라)의 충고가 다시금 생각나는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