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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보티첼리의 비너스

 

세계사 교과서의 한 페이지를 늘 장식하곤 했던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익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덕분에 르네상스의 거장이라 하면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를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보티첼리도 우리에겐 익숙하다. 조각상을 연상시키는 우아한 자태의 아름다운 여인은 신들이 불러일으키는 바람과 파도를 타고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만 같다. 르네상스라 불리는 시대는 이 작품과도 같이 싱그러운 바람과 향기를 한껏 머금은 채 인류의 역사에 도래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 작품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보통의 사람들보다 비너스의 목이 길게 늘어졌다는 것과, 한쪽 어깨와 팔도 마찬가지로 길게 늘어져 있다는 것을 금방 발견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궁금증을 품게 된다. 보티첼리는 왜 인물을 이처럼 왜곡된 형태로 그렸던 것일까. 그는 미켈란젤로와 다 빈치처럼 인물을 실제와 같이 그릴 능력이 없었던 것일까. 인체의 왜곡된 형태 말고도 양감 역시 시대를 역행하고 있는 것만 같다. 선진적인 회화 기법이 발견되면서 르네상스 회화 속 인물들은 실제 인물과 같은 현실성을 띠게 되었지만, 보티첼리의 작품 속 인물들은 여전히 대리석으로 된 조각상, 혹은 인간세계와 동떨어진 신들의 세계에 속한 인물로 묘사되었다. 사실성만 놓고 단순 비교해보면 그 보다 약 100년 전에 출생해 시대를 풍미했던 조토 디 본조네로부터 진보를 크게 이루지 못한 예술가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보티첼리는 전혀 다른 방향과 비전을 지녔던 것일 뿐, 훌륭한 예술가였다. 르네상스의 많은 예술가들이 과학적 발견과 맞물려 인물을 되도록 현실적으로, 실제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재현하는데 열을 올렸을 때, 그러한 경향에 동참하지 않고 중세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고수한 예술가들이 있었다. 보티첼리의 다른 작품들을 살펴보면 그가 인물의 신체를 충분히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그는 현실적이고 사실적으로 그리는데 관심이 없었을 뿐이었다. 르네상스 초기에서부터 15세기까지 신흥 자본가와 겨루며 아직 건재했었던 몇몇 귀족과 교회 세력은 중세적 취향을 포기하지 않았었다. 뿐만 아니라 르네상스 초기 사업가로 등장했던 몇몇 가문들은 권력의 안정권에 들어서면서 초창기의 기업가 정신을 뒤로 하고 귀족적 취향과 생활방식을 선택하기도 했다. 이들 세력이 보티첼리와 같은 화가에게 후원해준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르네상스 미술의 또 하나의 축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보티첼리보다 50년 빨리 출생했던 마사초와 비교해 보면 보티첼리의 특징은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마사초가 그린 ‘개종자의 세례’는 분명 종교화이지만, 작품 속 인물들의 형태와 분위기는 흡사 현대인과도 같아 한눈에 작품 연대를 유추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 때문에 일종의 섬뜩함 마저 들기도 한다. 마사초는 회화 안에서 모든 신성의 영역을 깨부수리라 작정하기라도 한 것 같다. 이 작품은 ‘비너스의 탄생’보다 60년 전에 그려진 것이지만, 인물의 신체와 표정, 제스처는 현대와 더 가깝게 느껴진다.

‘개종자의 세례’보다 15년 뒤에 그리고 ‘비너스의 탄생’보다는 40년 빠르게 제작된, 또 하나의 위대한 피렌체 예술가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는 마사초보다는 보티첼리에 가깝다. 인물들은 조각상과 같은 견고함과 우아함을 지녔다. 곰브리치는 이 작품을 일컬어 예술가의 겸손함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칭송했다. 이 작품의 천장 부분을 살펴보면 안젤리코 역시 마사초 못지않게 완벽히 원근법을 구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안젤리코는 중세적 가치를 고수한 작가였으며, 심지어 인물의 후광마저도 거두지 않았었다.

보티첼리는 한때 메디치가의 후원으로 풍족한 생활과 명성을 누렸던 작가였다. 하지만 말년에는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에게 완전히 밀려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르네상스 회화는 점점 더 과학적 탐구와 발견에 밀접하게 연결되었고, 레오나르도 대에 이르러서는 매우 사실적일뿐더러 우아함 마저 갖춘 회화들이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보수적이고 반동적이라는 오명을 썼던 보티첼리의 작품들은 후대 미술사가들에 의해서 재발견되었다. 그만큼 비너스를 우아하고 아름답게 표현한 예술가는 드물었다. 보티첼리의 작품은 과학과는 분리된 르네상스 회화의 가치를 환기시켜 줄 뿐만 아니라 여전히 우리들에게도 신비스러운 마력을 한껏 뿜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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