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파리*
/김상미
영화 <똥파리>를 보았다. <똥파리> 속에는 ‘시발놈아’라는 말이 셀 수 없이 나온다. 그리고 그 말은 보통 영화의 ‘사랑한다’는 말보다 훨씬 급이 높고 비장하다. 지랄 맞게 울리고 끈질기게 피 흘리는 그 영화를 다 보고 나와 아무도 없는 강가에 가 소주 한 병을 마셨다. 그리고 목이 터져라 ‘시발놈아’를 스무 번쯤 소리쳐 불렀다. 그랬더니 내 가슴 안 피딱지에 옹기종기 앉아 있던 겁 많은 똥파리들이 화들짝 놀라 모두 후드득 강물 위로 떨어졌다. 시발놈들!
*양익준 감독의 영화.
- 김상미 시집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통쾌하다. 후련하다. 뻥, 뚫린다. 때로는 단 한 마디의 욕설이 얽히고설킨 관계를 단 한 방에 정리해주기도 한다. 사랑에 너절하게 들러붙어 있는 연민이나 미련이나 앙금 그리고 배신까지도 ‘시발놈아’ 한 마디 속에 모두 용해될 수 있다. 용해되어 용서에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내 가슴 안 피딱지’는 그대로 두자. 그것마저 사라진다면 사는 게 재미없다. 그 대신 그 피딱지에 옹기종기 앉아 있는 겁 많은 똥파리들은 후드득 떨어내자. 단,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외쳐야 한다. 영화가 아니라서 누가 들으면 급이 높지도 않고 비장하지도 않게 된다. /김명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