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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의 명장 이광(李廣)은 여러번 흉노의 침공을 물리친 전공이 인정돼 후일 무기상시(武騎常侍)에 이르고, 농서와 농북의 태수까지 지냈다. 그런 그가 개인적인 원한으로 태능위를 죽였는데 이는 잘못된 일이었다.
그는 한무제에 상주하여 죄를 문책해 줄 것을 청했다. 한무제는 “사사로운 원수를 갚는 것은 황제인 과인도 저지를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관모를 벗고 맨발로 입궁하여 단죄를 청하는 것은 과인이 바라는 바 아니다.” 이광을 용서한 것이다.
선제(宣帝) 때 장창(張敞)이 무고하게 서순(絮舜)을 죽였다. 그도 과분한 것을 깨닫고 황제에게 단죄를 상주했다. “소신은 수하인 서순을 매우 어여쁘게 생각했습니다만 후일 소신을 탄핵해야 한다는 무리와 동조해‘5일 경조(京兆)’라고 놀려댔습니다. 소신은 그를 배은망덕한자로 단정하고 살해하였습니다. 수하를 살해한 것은 권력을 남용한 것이니 죄를 내려 주시옵서소.” 선제는 장황의 성실함에 감동되어 그를 문책하지 않았다.
한편 한무제 때의 대신 장탕은 어사대부(御史大夫)까지 지내면서 한무제가 국가시정 방침을 결정할 때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때문에 한무제는 장탕을 매우 총해하였다.
훗날 노갈거(魯竭居)사건이 터졌다. 한무제는 그 시말을 장탕에게 물었다. 장탕은 사실대로 고하지 않았을뿐아니라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한문제는 장탕의 오만과 자기 과신이 나라에 도움이 돼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처단해 버렸다.
한무제가 이광을 사면하고 장탕을 처단한 것은 모순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큰 차이가 있다.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한 자와 황권에 반대한 자와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정치인들은 탄핵 후폭풍에서 벗어나려고 일구이언을 예사로 하고 있다. 한무제가 살아있었다면 장탕 꼴이 되고도 남을 인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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