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면 화학물질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로 목숨을 잃은 지 얼마 됐다고 정부의 대책은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안전성 논란을 아직도 일으키고 있는 ‘살충제 달걀’에서부터 ‘화학물질을 함유한 생리대’에 휴대전화 용품에서마저 유해물질이 검출되는 등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가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생산 농가와 기업의 부도덕 행위를 탓하기에 앞서 정부 당국의 소극적인 대책이 공포를 부추기지나 않았는지 반성해볼 일이다. 이렇듯 각종 생산품에서 안전성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지만 관리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정부가 내버려 둬 온 것도 더 큰 문제다.
최근 한국소비자원은 시중에 유통·판매 중인 휴대폰 케이스 30개 제품(합성수지 재질 20개, 가죽 재질 10개)을 대상으로 유해물질 안전성 및 표시실태를 조사한 결과 6개 제품에서 카드뮴과 납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납은 노출될 경우 식욕 부진과 빈혈, 소변량 감소, 팔·다리 근육 약화 등을 유발할 수 있고, 카드뮴의 경우 폐와 신장에 해로운 영향을 미쳐 발암등급 1군으로 분류된다. 대부분 중국산 제품이어서 수입하는 과정에서 철저한 검역절차를 거친 것인지 의심스럽다.
또 생리대 부작용을 둘러싼 소비자 불안감이 커지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생리대 제조사 5곳에 대해 최근 현장조사를 벌였다. 이마트와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3사와 주요 편의점들은 ‘깨끗한 나라’ 제품 릴리안 생리대 판매를 전면 중단했다. 제조사인 ‘깨끗한 나라’는 지난 28일부터 릴리안 생리대 전 제품에 대해 개봉 및 영수증 보유 여부, 구매 시기와 관계없이 환급해주고 있다. 인체 유해여부에 대한 조사결과에 관계없이 이미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유산했다’, ‘생리불순이 생겼다’, ‘생리통이 심해졌다’와 같은 주장이 제기돼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것은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도대체 국민은 무엇을 먹고, 어떤 용품을 써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우리 주변의 식품과 생활용품 가운데 이 말고도 모두를 의심해야 하는지 답답한 노릇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물론 농산물품질관리원 나아가 정부 전 부처가 나서 국민의 먹을거리와 생활용품에 대한 안전확인에 행정력을 집중해야 한다. 부처 간 나누어진 감독과 검사 기능을 통합 관리할 방안도 시급하다. 공무원들은 책임을 미루는 습성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에 더 그러하다. 우리 사회에 확산한 케미포미아(화학물질 공포증)를 차단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