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철규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는 없다
우리는 운동장 한구석에 모여 때를 기다린다
한 손에는 그을린 유리를 들고
손바닥만한 달이 운동장만한 해를 가린다
달의 뒤통수가 뜨거워진다
사위가 어둑해지고 달과 태양이 포개지면서
검은 우물이 만들어진다
태양에 은빛 갈기가 돋아난다
눈동자가
깊이
깊이
가라앉는 것 같아
나는 주저앉았다
환호성을 지르는 아이들 가운데서
- 신철규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가 없듯이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는 없다. 그렇지만 달이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뒤통수가 뜨거워질 만큼 해와 가까이 있는 달이 우리와 해 사이를 가로막는다면, 손바닥만한 달이라도 운동장만한 해를 가릴 수가 있다. 이렇게 되면 사위는 어둠에 싸이고 그 어둠의 중심에는 검은 우물 같은 달이 자리를 잡게 된다. 빛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빛을 가리고 있는 ‘어둠’을 사실과 진실을 가리고 있는 ‘거짓들’로 바꾸어 놓아보자. 거기서 시인은 가라앉는 눈동자를 본다. 누구의 눈동자일까. 세월호의 아이들일까, 시인일까, 나일까, 우리 모두일까. 어쩌면 역사일까. /김명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