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선 장미가 고요하다
/김남수
신발장 위 장미 한 다발,
거꾸로 매달린 채 칠백칠십일 수행중이다
들고 온 길을 버리고
갈피마다 쟁여둔 숨을 말리고 야위어가는 육신,
끌어내린다 전지가위를 거부하는
앙상한 몸에 서려 있던 고집이 나를 찌른다
물구나무로 건너 온 면벽의 표정 속에
저런 결기가 숨어있다니!
제 몸을 벼리며 쌓아올린 수행한 채,
저 묵언 속에는 얼마나 많은 기도의 밤이 접혀 있을까
잡념을 털어버리고 제자리에 건다
바람벽이 마른 고요 한 채를 덥석 받아 안는다
- 시집 ‘장미가 고요하다’
저 장미도 한때 호시절이 있었겠지. 화려함과 우아함을 탐하는 인간들의 눈길, 은은한 향내에 이끌린 벌과 나비들. 온통 장미만의 축제의 날들이 있었겠지. 그러나 세상 모든 만물이 그러하듯 어느 날 가차 없는 조락의 시간을 맞을 것이다. 마른 장미는 그 조락이 오기 전 온전할 때 말려야 한 다발 제 몫의 아우라를 풍길 수 있다. 자연의 섭리에 맡기지 않고 강제로 그 목숨을 거둔다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그러므로 마른 장미는 면벽의 날을 거치며 제 몸을 벼리고 벼려 결기로 완성한 고요의 집합체라 할 것이다. 시인의 눈은 저 거꾸로 선 장미의 꽃잎 하나하나마다 깃든 그 마르던 시간을 꺼내 짚어보았지만 그것이 어쩌면 호시절이었을 자신의 옛 모습과 겹치면서 저간의 곡절들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정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