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곳
/배한봉
벽 틈에 나무가 자라고 있다. 풀꽃도 피어 있다.
틈이 생명줄이다.
틈이 생명을 낳고 생명을 기른다.
틈이 생긴 구석.
사람들은 그걸 보이지 않으려 안간힘 쓴다.
하지만 그것은 누군가에게 팔을 벌리는 것.
언제든 안을 준비 돼 있다고
자기 가슴 한쪽을 비워놓은 것.
틈은 아름다운 허점.
틈을 가진 사람만이 사랑을 낳고 사랑을 기른다.
꽃이 피는 곳.
빈곳이 걸어 나온다.
상처의 자리. 상처에 살이 차오른 자리.
헤아릴 수 없는 쓸쓸함 오래 응시하던 눈빛이 자라는 곳.
- 배한봉 시집 ‘주남지의 새들’中에서
우리의 삶에 있어 틈을 보여주지 않는 완벽한 사람보다는 다소 허술한 틈이 있는 사람이 좋을 때가 있다. 고형물로 이루어진 바위에서는 나무나 풀이 자랄 수 없지만 작은 균열로 틈이 생긴곳은 하나의 생명체가 꿈틀거리는 동·식물의 안식처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틈은 생태계의 낙원일 수 있고 생명의 터전이기도 하다. 화자가 시를 이끌어 감에 있어 틈은 사랑을 낳고 꽃을 피우는 곳이라 했다. 따라서 틈은 어쩌면 아름다운 허점인 것이다. /정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