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울면
/류선열
큰 산 골짜기 두메 마을에선 이따금 산이 울어.
해가 높이 솟은 봄날. 엷은 구름이 산봉오리를 가려 답답할 때, 비알밭 갈던 농부가 쉴 참에 이젠 힘겨운 농사일을 떨쳐 버리고 머언 도회지로 떠나고 싶어질 때, 고사리는 새순 내는 걸 잊고 등성이 굴참나무는 졸며 개울에선 모래무지가 대가리를 묻고 있을 때, 그리고 이장 댁 기둥시계는 늑장을 부리고 학교에선 아이들마저 받아쓰기와 분수에 지쳐 있으며 선생님은 떠날 날만 꼽고 있을 때, 큰 산은 호령을 하듯 크게 저르렁- 하고 울어.
산이 울면, 큰 산이 울면 산봉우리는 말끔히 개고 농부는 새 힘이 솟는 듯 쟁기질을 시작하며 고사리 새순이 도르르 말려. 굴참나무는 부지런히 지하수를 길어 올리고 모래무지는 달음박질을 하며 이장 댁 기둥시계는 더 빨리 추를 흔들어. 그리고 선생님은 목청을 돋우고 아이들 눈은 비로소 똘방똘방해지는 거야, 산이 울면
- 류선열 동시집 ‘잠자리 시집보내기’ / 문학동네·2015
농사를 짓지는 않지만 큰 가뭄에 애타는 농부들 마음을 헤아리며 아파하던 며칠 전, 한 밤중에 우르릉 쾅쾅 번개와 우레가 창문을 찢어 버릴 듯 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속이 다 후련해지는 소리였다. 불면의 밤 어쩌다 단 잠에 들었으나 잠을 깨우는 소리가 섭섭하지 않았다. 시인의 마음이 드려다 보인다. 대개 하늘이 운다고 하지 산이 운다고는 표현하지 않는다. 시인은 하늘을 끌어내려 보다 친숙한 산과 근친관계를 이루게 한다. 그래서 도시로 떠나고픈 농부와 나아가 선생님의 마음과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들을 자연스레 엮어준다. 지금도 이장 댁 기둥시계는 더 빨리 돌고 있을 것이다. 선생님은 목청을 돋우시고, 아이들은 더욱 더 눈이 똘방똘방해지고 있을 것이다. /조길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