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기관에는 ‘특수 활동비’라는 예산이 있다.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정보·수사 활동이나 국정 수행활동 등에 소요되는 경비다. 사업내용이 노출될 경우 정책수행에 차질이 우려되기 때문에 밝힐 수 없는 예산이다. 그런데 기밀유지라는 이유로 증빙서류를 명확하게 공개하지 않아 시비의 소지가 많다. 본래 목적 외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가 발견되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특수활동비로 4조원 가까운 엄청난 돈이 법적 근거 없이 사용됐다니 참 어이가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4월 법무부와 서울중앙지검 간부들의 이른바 ‘돈봉투 만찬’ 사건이다. 특수 활동비는 필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본래의 용도와 달리 일부 고위 관료들이 개인적으로 유용하고 있는 것이다. 소중한 국민의 세금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이에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이 각 부처의 특수활동비 개선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하면서 국정과제가 됐다. 이어 감사원이 지난 7월19일부터 대통령실, 법무부 등 19개 기관을 대상으로 ‘특수 활동비 집행실태 점검’에 나서 증빙자료 구비 실태를 확인한 바 있다. 고도의 비밀유지 필요성 등 타 집행기관과 예산 성격이 다른 국정원은 점검에서 제외했다.
점검 결과 50.3%는 증빙자료를 구비했으나, 나머지 49.7%는 지급 상대방·일자·금액·사유 등을 기재한 집행내용 확인서를 갖추지 않았다. 외교부 등 3개 기관은 특수활동비 관련 자체 지침이나 집행계획조차도 세우지 않았다고 한다. 감사원은 예산의 편성·집행·관리에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이라고 권고했다. 이에 정부는 2018년 예산안을 수립하면서 각 부처 특수활동비를 올해보다 17.9% 줄어든 3천289억원으로 책정했다. 대통령 비서실의 경우 특수활동비 예산을 22.7% 감소시켰으며, 대통령 경호처와 국세청도 20% 정도 줄였다.
‘국가재정법 개정안’도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수원정·사진)은 24일 정부 기관의 특수활동비 예산 편성과 집행을 투명화하기 위해 특수활동비 예산 총액편성의 근거를 법에 명시하는 내용의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이다. 개정안은 특수활동비 예산 총액편성의 근거를 법에 명시하도록 했다.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가 요구하면 집행 내용을 제출해야 한다. 박의원의 지적대로 ‘국정원, 검찰, 경찰, 국세청 등 권력기관은 국민세금을 쌈짓돈처럼 쓰며 국민위에 군림’해왔다. 그래서 특수활동비를 검증 가능한 업무추진비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