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신선
깡마른 육체 속에 막 짓다 만 열반인지
그 비좁은 실내에
천장까지 목숨의 환락을 새파랗게 쟁인 게
반쯤 무너진 잎마디의
겨드랑이 틈새로 들여다뵈는
징그러운 더위도
택배선물처럼 수납해
집 뒤 얕트막한 자드락에
사소하게 핀
늦여름 달개비꽃
- 시작(2106년 겨울호)
닭의장풀이라고도 불리는 달개비꽃, 어렸을 적 갯둑에서 흔하게 만나던 꽃이라 그저 덤덤했는데 언젠가 화분에 화훼용으로 기른 탐스러운 모습을 보고 새삼스레 눈여겨보게 된 꽃이다. 그 후론 어디서 만나든 반갑다. 시로서 만나니 더 반갑다. 꽃 속에서 열반을 읽다니! 그것도 짓다 만 열반이라니, 목숨의 환락을 들여다보면 짓다만 열반이기도 하겠다. 무릇 열반은 육체와 영혼의 초극을 통해 도달하는 경지일 것, 저 달개비는 겨드랑이 틈새에 가까스로 목숨의 환락을 새파랗게 쟁였으니 어찌 열반적정에 도달할 수 있으랴. 그러나 징그러운 더위 속에서 피운 저 고난의 개화는 더위도 택배선물처럼 수납할 줄 아는 넉넉한 품새를 지녔을 것이다. 사소하지만 들꽃들은 그래서 위대하다. 밭둑에서 풀을 뽑다 이제 막 줄기 끝에 잎자루 몇 개씩 매단 달개비 몇 포기를 만난다. 목숨의 환락을 보려 호미날을 비킨다. 올 여름 뙤약볕 속에서 짓다 만 열반을 읽을 수 있겠다.
/이정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