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의 나
/문창길
달빛 낮게 깔리는 밤
검은 고양이의 수염 끝으로 풋별 하나 깨어나고 있다
내려앉은 하늘방으로 서리꽃 피는 하루를 거둘 때면
의식을 곤두세우는 작은 벽거울 속에 쓰러지는 내가 있다
뼈아픈 겨울바람으로 흩어진 새벽 신문의 온기와
일기의 쓰다만 여백이 영혼의 먼지를 가라앉힌다
이윽고 어둠을 밀치고 일어나는 검은 고양이에게
잔별들은 소나기처럼 빛을 쏟아 내린다
한 발자욱씩 야웅거리는 사랑이 가까워지고
어둡고 거칠은 유배의 세상이 두렵다
먹다 만 라면 몇 가닥만이 몇 구절 거짓시처럼 불어터져
한가하게 널브러진 구석방에서
얼룩처럼 적힌 거울 속의 내 이름을 지운다
- 문창길 시집 ‘철길이 희망하는 것은’/ 들꽃
등단 18년 만에 내놓은 시집. 2001년도에 펴낸 시집인데도 ‘거울 속의 나’는 지금의 시와 견줄 때 조금도 뒤처지지 않는다. 서리꽃 피는 하루, 하늘방, 새벽 신문의 온기 등의 표현으로써 시인의 삶은 지극히 고단한 삶이며 지금 뼈아픈 겨울바람과 함께 돌아오는 지친 시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몸은 지쳤지만 정신은 살아있어서 일기의 쓰다만 여백이 영혼의 먼지를 가라앉힌다. 이윽고 시인은 고양이처럼 어둠을 밀치고 일어나고자 하는데 그 정신에 소나기처럼 잔별들의 빛이 쏟아져 내린다. 한 발자국씩 다가오는 사랑이 있는 한 아직 희망이 있는 것이다. 어둡고 거칠고 소외당하는 현재를 지우고 거울 속에서 거듭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김은옥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