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서로의 글들을 주고받는 외국인 교수가 있다. 그는 한·중·일 3국의 고전문학에 정통하며, 동북아 상호관계의 남다른 미래비전도 제시하는 탁월한 동양학자다. 특히 한국사회의 문제들을 그가 수용한 ‘선비정신’을 통해 해법을 제시하는 유별난 한국전문가이기도 하다. 그가 바로 ‘한국인만 몰랐던 더 큰 대한민국’의 저자로 잘 알려진 미국인 이만열 교수(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다.
어떤 대상을 관찰할 때에는 다양한 거리와 각도에서 이리저리 살펴볼 수 있다. 반면, 자기 자신을 볼 때에는 거울을 통해 부분적으로 보거나 타인을 통해 의견을 듣는 수밖에 없다. 새 옷을 입고 빙글 도는 익숙한 장면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보이는 모습 역시 같은 이치일 것이며, 누군가 외국인의 시각으로 우리를 관찰하고 진솔한 자문을 준다면 몹시 유익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10년 전 독일인 호르스트 텔칙이라는 인물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한국을 떠나게 했던 안타까운 기억이 난다. 그는 헬무트 콜 수상 당시에 안보수석으로 독일통일의 설계를 진두지휘한 인물로, 독일에서 별명이 ‘통일설계사’로 통할 정도다. 그는 대단한 의욕으로 한국을 방문했으나 그를 제대로 알지도, 대우도 못했던 당시의 과오가 앞으로는 없길 바란다.
여러 해 동안 이만열 교수의 국내 활동은 왕성했다. 요즈음은 한국인보다도 한국을 더 잘 아는 인물로 알려졌다. 그는 한·중·일 3국의 고전과 문화를 폭넓게 습득하고 정서도 잘 이해하며, 연구영역을 지구환경과 인류의 문제 그리고 미래세대의 교육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필자의 눈에 두드러지는 그의 주요 주제는 한국인의 진면목을 되찾는 것과 기후변화 문제다. 그는 지구환경의 제반 문제들은 한국의 전통가치관 속에 그 해법이 숨어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기후변화문제를 안보개념에 포함시켜 기후변화 문제를 주도함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의 입지 강화의 길임을 자문한다. 이처럼 외국인의 시점으로 우리가 못 보는 것을 알려주고 심지어 외교 전략까지 발휘하는 학자의 활약은 한국의 복(福)이라고 여긴다.
최근 이만열 교수의 기고문을 접하고 많이 당황스러웠다. 왜냐하면 그 제목이 ‘나는 대학을 그만둡니다-이론적 삶이 아닌, 실천적 삶을 살기로 결정한 이유-’였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스스로 인식한 지구환경의 문제, 인간성 상실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지구시민 정신과 운동의 전개’가 그 출발점임을 자각했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에서는 인류가 직면한 중대한 이런 문제에 비중을 두지 않으며 강의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례로 그의 기후변화 강의에 수강신청한 학생 수가 거의 없어 추후 알고보니 자신의 수업시간은 선택과목이며 다른 경제학들은 필수과목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기후변화 강의에 수강을 원했던 많은 학생들이 참석하지 못했던 것이다.
평소 교육의 핵심을 “인생의 중요한 가치를 스스로 깨닫고 실천으로 옮기는 저력을 쌓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그에게는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 교수는 언젠가 강의시간에 왕양명의 ‘지행합일(知行合一)’을 한자로 쓰며 강조했다한다. 양명학에서의 지행합일은 ‘알았으면 실천하라’는 선지후행(先知後行)과는 달리, ‘앎이 실천의 시작이며, 실천이 앎의 완성’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때문에 그의 기고문에서 언급한 “이론적 삶이 아닌, 실천적 삶을 살기”는 그가 끊임없이 밝히며 동시에 행하는 지행합일의 철학이며 신조일 것 같다. 대학에서 자유로워진 이 교수의 실천방향은 ‘지구경영원’을 여러 곳에 세우고 공통의 목표와 의식를 공유해 지구환경문제, 평화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라고 한다.
이번에 이만열 교수가 대학을 그만둔 것은 새롭고 더 큰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결단이며 용기다. 그의 또 다른 저서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에서 갈파한 것처럼 우리의 교육은 ‘속도’만 치중하다 ‘방향’이란 중요한 가치를 잃어버린지 이미 오래되었다. 필자에게 그의 결행은 낡고 병든 한국 대학교육에 대한 ‘사망선고’로 기록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