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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여행]천안 유관순 열사 유적을 찾아서 2

 

 

 

미세먼지가 여행을 나서는 발목을 붙잡는다. 그러나 유관순 열사를 찾아 나서는 길에 미세먼지가 대수랴. 마스크로 위안을 삼아보며 오늘도 문화유산 여행을 이어가보자.

유관순 기념관을 빠져 나와 계단을 올라가면 유관순열사의 추모각이 자리하고 있다. 이 추모각은 유관순 열사의 애국정신을 추모하고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의 뜻을 기리기 위해 1972년에 건립되었으며, 매년 추모제를 거행하고 있다.

추모각 내부 중앙에는 유관순 열사의 영정이 자리하고 있다. 영정 속에서의 유관순 열사는 태극기를 두 손으로 꼭 쥐고 나라를 걱정하는 표정과 결의에 차 있는 당찬 모습이다.

추모각 왼쪽으로 난 길을 통해 산길로 향한다. 산길로 접어들어 돌계단을 오르면 유관순 열사의 초혼묘를 만나게 된다. 초혼묘는 영혼을 위로하는 묘이다. 다시 말하면 이 묘에는 유관순 열사의 시신이 없다. 그럼 유관순 열사의 시신이 묻힌 묘는 어디에 있을까? 안타깝게도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아우내장터의 만세운동 주동자로 붙잡힌 유관순은 징역 3년형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지만 끝내 살아서 나오지 못한다. 1920년 9월28일에 사망한 유관순 열사의 시신은, 이화학당에서 인수받아 이태원공동묘지에 안장이 되었지만 이태원공동묘지가 일제강점기 사라지면서 열사의 묘소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이 초혼묘는 열사의 영혼이나마 편히 잠들기를 바라며 1989년 만들어진 것이다.

초혼묘를 뒤로 하고 매봉산 정상을 향해 오른다. 간만에 산행 아닌 산행을 하자니 숨이 차오른다. 차오르는 숨을 몰아쉬며 만난 것은 유관순열사 봉화지이다. 봉화지에는 봉화대와 봉화탑이 자리하고 있다.

‘3월 31일, 자정이 가까워지자 유관순열사는 집 뒤에 위치한 매봉산 꼭대기로 올라 조용히 횃불을 들어올렸다. 조용히 작은 불빛으로 시작된 봉화는 매봉을 중심으로 청주, 진천, 목천 등 동서남북에서 24개의 불꽃이 밤하늘을 밝혔다. 4월 1일에 있을 거사를 최종 확인하는 횃불이었다.’

당시 유관순열사가 들었던 횃불은 지금은 만날 수 없지만 이 봉화탑에서 매년 3월 마지막 날 봉화를 올림으로써 그날을 기념하고 있다.

매봉산을 넘어서면 유관순 생가가 있다. 봉화탑을 지나 산을 넘을 수도 있고, 다시 추모각으로 나가서 차를 타고 생가로 오는 것도 좋다. 차를 타고 생가로 진입하다보면 한옥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이 한옥이 혹시 생가인가 싶지만 이 한옥은 유관순 열사 생가 관리사이다.

유관순 열사의 생가는 한옥 바로 옆에 자리한 아담한 초가집이다. 방 2칸에 부엌, 헛간으로 구성된 자그마한 초가가 유관순열사가 당시 근근이 살아가는 농부집안의 딸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하지만 그녀의 집안은 조선 중기 광해군 때까지 높은 벼슬을 지낸 양반 집안이었다. 그러다 인조반정 이후 광해군 복위사건의 역모 누명을 쓰면서 가문이 위기를 맞았다. 살아남은 가족의 일부가 이 곳에 자리를 잡았다.

복원된 이 생가 안방에서는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벌일 것을 모의하고 있고, 건넌방에서는 유관순이 아우내 만세운동 때 사용할 태극기를 제작하고 있는 모습이 재현되어 있다.

초가집 툇마루에 앉아 파란 하늘을 우러러 보자니, 초가집 입구에 자리한 커다란 나무 두 그루만이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는 듯 눈에 가득하다. 18세의 나이로 아우내 장터의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그 모진 고문을 이겨낸 유관순 열사를 지탱해준 정신적 지주는 무엇이었을까?

유관순열사 생가 바로 옆에는 매봉교회가 위치해 있다. 지금은 매봉교회라 부르지만 유관순열사가 어릴 적에는 지령리 교회였다. 지령리 교회는 유관순의 배움터이자 놀이터였다. 유관순 열사가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을 준비할 당시 어쩌면 매일같이 이곳에 와서 기도로 준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꽃다운 나이에 총칼에 맞서 맨몸으로 태극기를 들었던 열사의 이야기에 미세먼지를 탓하며 잠시 망설였던 것이 부끄러워진다. 이러저런 핑계는 뒤로하고 3월이 가기 전 천안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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