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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더 늦기 전 ‘위안부’ 피해자에 공식사과 이뤄져야

수원에 거주하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안점순 할머니가 지난 30일 90세로 한 많았던 세상을 떠났다. 먼저 암울한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통한의 세월을 살다 가신 안 할머니의 명복을 빈다. 할머니의 별세로 생존자는 이제 29명밖에 남지 않았다. 올해 들어 석 달 사이에만 세분이 유명을 달리했다. 지난 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가 용기를 내 국내 최초로 위안부 피해를 증언했다. 이후 공식적으로 239명이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돼 있었는데 이제 29명만 생존해 있는 것이다.

이날 세상을 떠난 안점순 할머니의 일생은 참으로 기구했다. 열네 살이란 어린 나이에 서울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 중국 내몽골로 추정으로 추정되는 ‘모래만 보이는 곳’에서 해방될 때까지 3년간 끔찍한 성노예 생활을 해야 했다. 해방 후엔 북경에 8개월간 머물렀다가 다음해에 돌아왔다. 귀향 후 4개월여를 앓아누워 있다가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으로 회복됐지만 그 끔직한 기억 때문에 혼인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아왔다. 그러다가 1990년경 조카와 함께 수원으로 이사했고 1993년 조카딸이 피해 사실을 신고함으로써 피해자로 등록됐다.

이후 안 할머니는 다시는 역사의 뒤안길로 숨지 않았다.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수요집회와 아시아연대회의 등에서 일본군의 만행을 증언했으며, 2014년 5월 수원시청 앞 올림픽공원에 평화비(평화의 소녀상)가 세워진 후부터는 평화 활동가로 나섰다. 박근혜 정부가 2015년 12월 일본정부와 ‘한일 위안부 합의’를 해버리자 합의를 인정하지 않고 일본 정부의 이른바 ‘위로금’을 수령하지 않았다. 지난해 3월 8일에는 유럽에 처음으로 설치된 독일 레겐스부르크 평화의 소녀상(순이) 제막식에도 참석할 정도로 열정을 보였다.

수원 평화나비는 지난해 12월 안점순 할머니 구순잔치를 열어 드렸다. 원래는 올해가 구순이었지만 건강이 점점 나빠지는 것을 감안해 미리 개최한 것이다. 이 잔치에서 안 할머니는 모처럼 활짝 웃으며 즐거워했다. 사실 위안부 피해자들은 평생 웃을 일이 없었다. 피해자임에도 죄인처럼 숨어 지내야 했다. 위안부였음을 밝히자 친구들이 떠나갔으며 주변의 손가락질도 받았다. 그럼에도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스스로를 드러낸 할머니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 그 분들이 이제 29명만 남았다. 우리도 그 분들을 돌봐야 하지만 일본 정부의 진실한 사과와 제대로 된 보상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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