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희
무궁화 공원묘지 성복 13호
해질녘에야 햇살 잠깐 머물다 가는 곳
바람떡과 샤브레쿠키 매화수 한 잔 올려놓고
잡초를 뽑고 땅벌집 구멍을 메우며
잠시 옛날을 생각해보는
추운 비석 앞에
어쩌자고 민들레는 넙죽 와서 피어있다
증명사진처럼
앨범 속 흑백 사진 한 컷으로 본 애들 고모
청춘의 설은 미소같이
- 한국시인협회 사화집 / 2016
화자가 시 속에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저 공원묘지의 주인은 가까운 부모님이거나 지인이리라. 부모 자식 간의 인연은 그 무엇보다도 지중하지만 자식은 막상 부모님이 돌아가신 다음에야 참 사랑을 깨닫게 마련인 것, 화자도 그 절절한 그리움과 회한으로 성묘에 임했으리라. 그러나 이토록 담담하게 얼핏 스치는 정황 묘사만으로 오히려 더욱 큰 심적 울림과 실감을 전할 수 있다니! 개자추의 전설에서 유래한 한식은 동지 뒤 105일째 되는 날이다. 옛날에는 4대 명절에 하나였지만 지금은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어도 집안에 따라 성묘와 제사의 풍습이 이어지고 있다. 한식을 기해 성묘를 하는 화자의 심경이 ‘추운 비석 앞에/ 어쩌자고 민들레는 넙죽 와서 피어있다’는 진술 앞에 은연중 감추어져 있다. 민들레의 질긴 생명력 앞에 유한하고 무상한 인간의 한 생애가 겹쳐져 읽히는 이유이다. /이정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