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이 사람은 내 말을 듣고 있기는 한 걸까요? 내가 말한 것과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서로 말꼬리만 잡지, 내용이 전혀 연결되지 않아요. 분명히 대화하려고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부부싸움을 하고 있더라구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부부교육과 코칭을 하면서 많이 듣는 질문이다. 우리 부부는 대화가 잘 안 된다고 이야기하면서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묻는다. 그럼 필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시작부터 잘못됐습니다.”
부부의 대화가 부부싸움으로 변질되는 이유는 대화의 시작을 ‘사실’이 아닌 ‘판단’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판단’의 말을 들으면 많은 사람은 그것을 공격이나 비난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반격, 방어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대화가 부부싸움으로 변질되는 이유이다.
‘사실’과 ‘판단’을 제대로 구별하지 않아 많은 부부가 아포리아(난관)에 빠진다. 여기서 사실이란 내가 보고 들은, 있는 그대로의 것이라면 판단은 사실을 자신의 방식대로 재해석한 것이고 사람마다 해석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래서 타인의 판단을 듣게 되면 내 생각과 다른 것이기 때문에 동의하기 어렵고 자신에 대한 공격이나 비난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예를 들어보자. 부부가 저녁식사를 함께하기로 했다. 그런데 약속시각이 다 되어가는데도 배우자와 연락이 안 된다. 약속시각이 1시간 가량 지난 후에 연락이 왔다. 급한 일이 생겨 연락을 못 했고 지금 약속 장소로 가는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30분 후에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자! 이런 상황에서 대화의 시작을 어떻게 하겠는가? 여기서 ‘사실’은 배우자가 약속장소에 90분 늦게 도착한 것이다. 그런데 대화의 시작이 사실을 재해석한 판단으로 시작할 경우 대화가 아닌 부부싸움이 된다. 특히 불필요한 부사(副詞)를 사용하는 판단과 가치관에 의한 판단은 부부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나는 매일 아침 9시까지 출근한다’ 이 문장은 사실일까? 판단일까? 평소 9시에 출근하는 직장인이라면 당연히 ‘사실’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문장은 ‘판단’이다. 휴일에는 출근하지 않는다. 불가피한 경우 지각하거나 아예 출근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매일’이라는 단어는 사실이 아니다. 아무리 사실을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불필요한 부사가 들어가면 판단의 문장이 된다.
“당신은 항상 이런 식이야!”, “어떻게 매일 늦을 수가 있어?” 이런 말을 듣게 되면 자신이 공격 받는다고 느끼고 바로 반격을 시작한다. “뭐가 항상이야?”, “어제는 늦지 않았어!” 자신에게 잘못이 있더라도 이런 반격이 가능한 이유는 배우자의 말이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항상’, ‘매일’, ‘또’, ‘매번’ 등의 단어는 사실을 판단으로 변화시킨다.
‘오늘도 날씨가 좋다’ 이 문장은? 당연히 판단이다. 어떤 날씨가 ‘좋은’ 날씨인가? 화창한 날? 비 오는 날? 아님 따뜻한 날? 시원한 날? 좋은 날씨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당신은 왜 이렇게 무책임해!”,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배우자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내게 잘못이 있든 없든 ‘무책임’과 ‘생각’이라는 자신을 평가하는 단어가 강하게 남는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부적절하다고 생각되는 평가에 대해 방어를 시작한다. “일 때문에 늦은 거야! 거기에 책임감이 왜 나와?”, “내가 바보야? 생각이 없게?”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비난을 수긍하기란 쉽지 않다. 반격을 받은 배우자는 다시 공격을 시작한다. 과거의 잘못을 다시 이야기하거나 말투, 억양 등을 이야기하며 2차 공격이 이어진다. 결국 대화 초반과 상관없는 주제로 다툼이 진행된다. 내용이 연결되지 않는 말꼬리 잡기는 대화가 아니다.
많은 부부가 싸움이 될 수 밖에 없는 대화의 시작을 하고 있다. 공격과 방어가 오가는 대화는 부부관계에 도움이 안 된다. ‘사실’로 시작하면 배우자는 그 말을 인정하게 되고 그 때부터 문제해결이 시작된다. ‘시작’이 변하면 ‘마지막’도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