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유일한(柳一韓) 선생은 유한양행과 유한학원의 설립자이다. 유선생은 1895년에 태어나서 1971년에 타계했다.
유선생이 타계한지 30여년이 지났어도 기억에 새로운 것은 생전에 일군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기업 경영권도 전문 경영인에게 물려 주는 등 현대사회의 기업정신을 몸소 실천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충격적이었다. 근대적 이념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국가에서 부의 사회 환원은 늘 강조되어 왔지만 실예가 없었기 때문이다.
유선생의 이같은 감동적인 사회쾌척은 그가 받은 교육에서 비롯됐다. 유선생은 9세때 평양에서 선교사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서 고학으로 미시간대학,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상학을 전공하고 스탠포드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몸만 한국 사람이지 그의 정신세계는 서구화 되었다. 때문에 이같은 부의 사회환원이 가능했던 것이다.
유선생은 생전에도 부의 사회 환원을 위해 1977년 유한학원을 설립하여 유한대학과 유한공업고등학교를 부천시 소사구 괴안동에 세워 산업역군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이학교 학생의 35%정도에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부천시와 유한학원은 유선생의 이러한 기업가 정신을 고양하고 기리기 위해 유한대학 앞 경인국도 6km 구간을 유일한 로(路)로 지칭키로 했다. 유일한 선생이 타계한지 33년만에 육신은 없지만 그의 기업가 정신과 박애정신이 부활하는 셈이다.
유일한 로를 위해 부천시는 10억여원의 예산을 확보, 부천시계에 관문을 제작하고 현재의 가로수종을 모두 갱신한다. 또 유한양행등 유한그룹에서도 녹화사업비와 설계등 각종 용역을 지원하기로 했다. 생전에 좋은 일 한 사람에 대해 잊지 않으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