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좋으면 인심이 좋다”고 한 우리였다. 우리 민족은 옛부터 모듬살이를 했다. 사람이 사는 곳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물이다. 그런데 부락마다 땅위로 솟아 오르는 자연적인 샘물이 있으란 법이 없다. 그래서 강물을 식수로 쓰거나 우물을 파서 우물 물을 식용수로 쓸 수 밖에 없었다.
우물의 역사는 곧 인간의 역사였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홍만선은 그의 저서 ‘산림경제’에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법에서부터 농사 짓는 일, 각종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 심지어 우물을 파고 다루는 지식까지를 설파하고 있다.
“부엌가에 우물을 파면 가족의 몸이 허약해 지고, 우물과 부엌이 마주보고 있으면 남녀의 관계가 문란해진다. 우물을 팔 때 수십개의 동이에 물을 담아 우물을 파고자 하는 것에 두고 한 밤 중에 여러 동이 가운데 별이 유난히 크게 비치는 곳을 파면 좋은 우물을 얻을 수 있다. 쓸모를 다한 우물이라도 함부로 메워서는 안된다. 이를 메우면 사람의 눈이 멀고, 귀가 먹는다 하였다.”
우리 조상들이 우물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를 알 수 있다. 수원시가 공들여 복원한 화성행궁(華城行宮)에서 정조대왕이 마신 어정(御井)과 임금이 붕어한 뒤에 제수(祭水)로 썼다는 제정(祭井)을 찾아 냈다 해서 화제다.
우물은 사방 90cm의 둘레, 5.4m의 깊이, 우물 안은 40cm 두께의 자른 돌 14개로 쌓아 만들고, 늘 4.4m의 수심을 유지하고 있음이 확인됐다니 놀랍다. 또 한 46개 항목의 수질검사 결과 적합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수원시는 이 어정수를 관광상품화할 계획이다. 올해로 정조 사거 224년째다. 그동안 땅속에 묻혀 있었던‘역사의 우물’을 찾아낸 것은 문화재 발굴 이상의 의미가 있다. 게다가 ‘임금의 물’까지 나눠 마실 수 있다면 관관상품으로서는 상종가를 기록할 것이 틀림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