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새 퇴화설
/정지우
조류도감 한 페이지가 찢겨 나간 흔적처럼
발자국은 꽃잎으로 진화되었다.
도도새 뱃속은 카바리아 씨앗을 품은 종목지였다.
자전하는 지구를 따라 싹이 트고
공기가 부풀어 오른 한철엔
새를 통과한 나무들만 날아오른다.
숲을 물고 있는 울음, 퇴화된 깃털들이 빠진다.
발자국이 자라나는 것을 보면
벼랑 끝에 숨어 있다는 추락은 낭설이다.
새롭게 발견된 존재들은 이미 사라지고 있는 중이라고
날개는 제 영역에 선회를 걸어놓고
퇴화되는 상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을 것이다.
꽃송이들 바람 쪽으로 진화하듯
날개를 잊어 가는 것은
열매가 말랑해지는 배앓이.
추락 밑에는 늘 묘목이 있었지만
카바리아 나무는 기우뚱한 달의 부리를 잡아
굳어 가는 퇴화를 긁고 싶은 것이다.
사라져 가는 나무의 종류들은
그늘 밑에서 자꾸만 돋아나는 날개를 본다.
제 몸에 맞는 상공이 없어 퇴화된 새들이 있다.
1681년을 끝으로 ‘도도’는 모리셔스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다. 1507년 포르투갈의 탐험대가 이 섬을 발견한 뒤 200년이 채 안 되는 시간이었다. ‘도도’(Dodo)는 ‘얼간이’라는 뜻이다. 날지도 못한 채 카바리아나무 주변이나 쓸데없이 어슬렁거리는 우수꽝스러운 모습 때문이다. 그 후 인간들은 도도를 무분별하게 포획하며 존귀한 생명을 하찮게 남용한다. 결국 멸종되고야마는 새. 그런데 도도가 멸종하면서 울창하던 카바리아도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다. “도도새 뱃속은 카바리아 씨앗을 품은 종목지”로, 도도를 통해서만 발아될 수 있었던 것. 도도와 카바리아는 공생관계를 맺고 있었고, 이때 공생이란 모든 ‘생명’의 존재방식을 압축한다. 그런데 400년이 지난 후에도 우리는 잘못을 반복하고 있다. “사라져 가는 나무의 종류들”이 “그늘 밑에서 자꾸만 돋아나는 날개를” 봐야 하는, 그 비극에 대해 우리는 언제까지 울 수 있을까. 우리에게는 과연 얼마만큼의 시간이 남아 있을까. /박성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