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소학당’은 1903년 5월 7일에 설립됐다. 며칠 뒤면 101년 째가 된다. 삼일소학당은 수원 최초의 사학으로, 지금의 북수동인 보시동(普施洞) 116번지에 위치한 수원읍교회(현 종로 감리교회)에서 고고의 소리를 올렸다.
개교 당시 교사(校舍)는 일(一)자 모양의 초가집으로 두 칸 폭에 네 칸의 방으로 나뉜 장방형 일반 민가와 같았다.
학생은 남자부 11명, 여자부 3명이었으며 초대 학당장은 이하영(李夏榮) 목사였다. 그는 구한말 개화기에 수원 사회에서 최초로 상투머리를 자른 개화인이면서 삼일학당의 첫 번째 교사이자 설립자이기도 했다.
1906년 삼일소학당은‘삼일여학당’과 ‘삼일남학당’으로 분리되고, 같은 해 목조 함석 지붕으로 신축한 종로교회로 이사갔다가 삼일여학당은 군기동(지금의 조원동 95번지)으로 교사를 옮기고, 삼일남학당도 현재 학교 터로 정착 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두 학교의 교사(校史)에 보면 최초 설립자와 설립 연년에 다소의 차이가 있다. 매향은 1902년 6월 3일 미국 북감리교 여선교회 선교사 M·F 스크렌턴에 의해 개교됐다하고, 삼일은 1903년 5월 7일 같은 날 한시에 두 학당이 설립됐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100년 전의 일인데다 확적한 고증(考證)이 없어서 다소 헷갈리긴하지만 보시동 초가에서 함께 지내며 근대교육을 한 것만은 틀림없으니 후일의 과제로 남겨 둘 수밖에 없다.
오늘날 두 학원은 크게 발전했다. 삼일학원은 삼일중학교, 삼일상업고등학교, 삼일공업고등학교로, 매향학원은 매향여자중학교와 매향여자정보고등학교로 굴지의 사학이 됐다.
그것도 바로 이웃에 나란히 세운 교사에서 한쪽은 신여성, 한쪽은 신남성으로서의 청운의 꿈을 키우고 있으니, 민족교육 100년의 자랑이라 아니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