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의 웃음
/최호일
바나나를 오전과 오후로 나눈다
바나나를 밤과 낮으로 나눈다
바나나를 동쪽과 서쪽으로,
만남과 사소한 이별로, 여자의 저녁과 남자로
나눈다
바나나로 세계를 나눈다
불안해지는 바나나
드디어 생선이 되는 바나나
왼쪽 바나나가 사라지고
바나나의 미래가 사라졌다
아 바나나 하고 웃는 바나나
바나나
네가 있는 곳을 알려줘
‘바나나’라는 대상의 속성을 해체하면서 이 시는 자유롭고 사유는 깊어진다. 화자의 연상 작용이 뻗어나가면서 바나나는 거듭 나누어지고 있다. ‘오전과 오후’, ‘밤과 낮’, ‘동쪽과 서쪽’, ‘만남과 이별’, ‘여자와 남자’ 등등으로 환기되고 유추된다. 흥미로운 것은 바나나라는 의미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미끄러져 내리면서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불안해지는 바나나’와 ‘아 바나나 하고 웃는 바나나’를 통해 바나나가 감정의 주체가 되기도 하고, ‘생선이 되는 바나나’에서는 물활성을 지니기도 하며 ‘왼쪽 바나나가 사라지고’나 ‘바나나의 미래가 사라졌다’에서는 바나나라는 존재의 새로운 의미부여가 이루어지고 있다. 확장하여 읽으면 어떤 존재의 해방이란 수면 아래 가려졌던 것이 수면 위로 드러나듯이 은폐된 것들을 드러내는 것이다. ‘중심부’에 대해 ‘주변부’가 느끼는 소외의식까지 해석의 지평을 확장하여 감상할 수 있다. /박수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