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밍
/김명서
세뇌와 복종은 닮은 꼴인가
잡종 케리
칭얼대는 목줄을 달래다가
지친 듯
나른한 햇살을 베고 졸고 있다
낯선 발자국소리에도 반사적으로
앞발을 들고
꼬리를 살랑거린다
개밥그릇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구토를 한다
토사물에 다량의 허기가 섞여있다
구토는 외롭다는 신호일 것이다
- 시집 ‘야만의 사육제’
세뇌와 복종으로 통칭되는 저 개들의 일상을 천착해봅니다. 가축이란 미명하에 일정한 거리로 한정되는 저들의 행동반경은 얼마나 답답한 속박인가요. 이 시는 그 답답한 일상을 주변 사물에 투영하여 일체화하고 있습니다. 칭얼대는 것은 목줄이 아니지요. 나른한 것도 햇살이 아니며 우그러진 개밥그릇은 꼭 개밥그릇이겠습니까. 엎질러진 음식물은 개의 토사물로 치환됩니다. 이 모든 것이 그루밍이라는 제목으로 환유되어 개를 치장하는 장식물로 읽힙니다. 참으로 슬픈 장치들이지요. 혹은 길들여진 채 살아야하는 개의 숙명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묶여있는 개를 보면서 하구한 날 무슨 생각을 하며, 무엇을 하며 날을 죽일까 문득문득 궁금해지던, 그런 날 언저리에서 만난 시입니다. 마지막 한 행이 명치를 때립니다, ‘구토는 외롭다는 신호일 것이다’. /이정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