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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드가의 파스텔화

 

 

 

유화물감은 화가들이 가장 많이 사용해왔던 재료였고, 그들의 대표작 역시 대부분 유화로 남겨져 있다. 드가 역시 빼어난 유화를 셀 수 없이 많이 남겼지만, 필자는 그의 파스텔화를 훨씬 더 좋아한다. 드가의 파스텔화에서는 화가의 감성과 재능이 유화에서보다 훨씬 더 드라마틱하게 펼쳐지곤 한다. 1880년작 ‘무대 위에서’에서는 신비로운 공간에서 춤을 추고 있는 무희들의 모습이 보인다. 화가의 손놀림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청녹색의 스커트는 번지는 듯 날리는 듯 하여 무중력 상태의 포즈가 지닌 아름다움을 증폭시키고 있다. 감추어지지도 다듬어 지지도 않은 날것 그대로의 파스텔 실루엣은 발레나의 팔을 더욱 우아하게 보이게 한다.

혹자는 드가가 냉혹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드가의 작품들 역시 그러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드가의 파스텔화를 보고 있노라면 그가 차가운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진다. 화면 안에서 작가의 감성이 풍요롭게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감성이란 매우 청량하고 자유로운 것인데, 파스텔을 매우 선호했던 드가였기에 그런 느낌이 잘 살아났을 것이다.

드가는 유화보다는 파스텔이 자신이 마음속에 품었던 색상을 보다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여겼다.

유화는 여러 가지 색을 혼합하다 보면 처음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색이 되거나 혼탁해졌지만, 파스텔은 여러 번 덧그려도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파스텔을 칠한 뒤 햇살에 비춰보고 지우고 다시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정성스럽게 그림을 완성해갔다. 여러 겹 덧칠한 파스텔화를 마무리하기에 시중의 정착액들은 적합하지 않았다. 정착액을 덧입히는 순간 또다시 색이 변질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의 동료가 그를 위해 특별한 정착액을 만들어주었다. 유화로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는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많아 붓을 집어던지며 성질을 부리곤 했지만, 파스텔을 잡고 있을 때는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었다.

물론 드가는 유화로서도 뛰어난 화가였다. 하지만 그가 지닌 능숙함과 손놀림 그리고 특유의 감성은 파스텔화에서 더 잘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유화도 파스텔화와 같은 색감과 감성을 지니게 된다. 그의 유화는 파스텔화를 점차 닮아갔다.

청록색 스커트를 입은 무희들 위쪽으로 흰색 스커트를 입은 무희들이 먼발치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들은 객석으로 보이는 어떤 지점을 향해 손을 뻗고 있다. 완벽한 동작을 위해 모진 연습을 견디며 때로는 매서운 혼꾸멍까지 감당해야 했던 그들은 이 순간, 완벽을 위해 희생되고 있는 제물과도 같은 존재이다. 드가는 그들이 겪는 희로애락을 전혀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이 구사하고 있는 완벽성을 최대치로 표현한다.

드가는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일들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며, 무대의 장면들을 작품으로 많이 남겼는데 아마도 무대라는 공간이 현실과 환상의 중간에 존재하는 공간이기에 드가를 그토록 매료시켰을 것이다. 정확성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드가였지만, 현실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그린 것은 잔인한 회화라 여겼고 대상을 새롭게 해석하여 거짓을 보탤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무대 위에서 화려한 연기를 펼치는 무희와 가수들은 매우 현실적인 존재이면서 동시에 상상 속의 인물이기도 하다. 어느 정도 이상화되고 정제된 공연자들의 모습은 언제 다루어도 흥미로운 주제였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무대에서의 모습 못지않게 무대 뒤의 무희들의 모습 또한 숱하게 많이 그려왔던 드가였건만 실제로 연습실을 구경한 적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무대 위의 무희들을 최대한 유심히 관찰하였다가 이를 재구성하여 무희들의 연습장면을 구상하기도 했고, 때로는 몇몇 무희들을 모델 삼아서 그리곤 했다. 그렇게 이미 무희들을 주제로 많은 그림을 그린 이후였다. 그는 친한 친구 알베르 에슈에게 한 번도 무용시험을 구경해본 적이 없다는 부끄러운 고백과 함께 어느 한 오페라 극장에서 열릴 무용 시험을 참관하게 해달라는 부탁을 편지로 건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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