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예사와 새
/최서진
곡예풍의 음악에 맞춰 춤추는 동안
공이 사라진다
외줄을 타는 거룩한 밤
아슬아슬한 나의 묘기
줄을 타면
브레이크가 고장 난 밤처럼
나는 떨어지는 걸 멈출 수가 없다
새와 바람 때문에
하늘을 날 수가 없어요
나의 소원은 떨어지지 않는 것
공중에서 멈추는 것
그곳에서 아침을 맞는 것
길을 공중에 만들어야 하니까요
곡예풍의 흥겨운 음악이 울린다. 폴카의 빠르고 경쾌한 박자는 곡예사는 물론이고 그 멋진 공연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손과 발을 들뜨게 한다. 곡예사는 손에 딱 맞는 공 서너 개를 공중에 던지며 온갖 기예를 펼치는데, 갑자기 공이 사라지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곡예가 마술로 변하는 순간의 그 환호는 관객이든 곡예사든 전율이다. 시의 전반부는 그러한 사태를 간결하게 담았다. 그리고 이제, 시점이 변해 시를 주동하는 주체인 ‘나’가 등장하고 두 번째 공연인 외줄타기와 함께 은밀한 고백이 시작된다. 공중에 그은 직선은 동아줄이다. 굵고 튼튼하게 꼬아야 곡예사의 하중을 견딜 수 있고, 또한 그 무게의 변곡을 줄 전체에 나눠줄 수 있다. 외줄을 타는 거룩한 밤이고 사람들은 아슬아슬한 ‘나’의 묘기를 보기 위해 먼 곳까지 왔다. ‘나’는 평생을 외줄에 몸을 실었으니 줄타기만큼은 자신 있다. 그러나 곡예사는 “줄을 타면/ 브레이크가 고장 난 밤처럼/ 나는 떨어지는 걸 멈출 수가 없다”고 고백한다. 무슨 일일까. 그는 왜 ‘떨어지기 위해’ 줄을 타는 것일까. 그러나 그의 은밀한 고백에는 또 다른 욕망이 숨어 있다. “나의 소원은 떨어지지 않는 것/ 공중에서 멈추는 것/ 그곳에서 아침을 맞”고 싶다는, ‘새-되기’의, 강렬하지만 불가능한 욕망 말이다. 그는 공중에 외줄이라는 가짜가 아니라, 진짜 길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시인이 시를 쓰는 것도, 이와 같다. 시인이란 곡예와 같아 불가능에 대한 욕망을 꿈꾸면서 언어의 심연에 다가서는 자다. /박성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