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후
/정영주
거미의 허기가 그물에 걸린
찢어진 벌의 날갯짓에 멈춰 있다
날개가 퍼덕일 동안
허기를 다독이는 저 교활한 배후,
한참 그 독한
정적을 노려보다
내 속에 여러 갈래로 얽힌
잔인한 그물을 읽는다
누구에게나 들키고 싶지 않은
깜깜한 정적이 있다
- 정영주 시인의 시집 ‘바당 봉봉’ 중에서
영문도 모른 채 벌의 날개는 찢어지고 벌은 또 거미의 허기를 달래는 희생물이 되어야 하리라. 그렇다면 거미의 허기는 악인가. 아니다, 거미의 허기는 자신의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자연이 허락해준 최소한의 방어막이다. 허기란 것이 없다면 식물도 동물도 인간도 생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를 존재하게 하는 나의 허기는 무엇일까. 잔인하지만 나의 존재 의미를 위해 내가 남모르게 쳐놓은 그물과 그 배후의 정적은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을까. 나의 그물이 아무리 여러 갈래로 얽히어 있다 해도, 바라건대 그것은 돈이나 명예 그딴 것들이 아니라 사랑이기를, 사람에 대한 사랑이기를, 그것도 가까운 사람에 대한 사랑이기를.
/김명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