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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현대 정치사에서 JP를 빼 놓고는 얘기가 안된다. 그만큼 JP는 우리나라 현대정치사의 중간에서 중심역을 한 것이다. 지금은 무대 뒤로 떠나거나 떠날 것을 준비하고 있는 갱년기 이후의 세대들은 JP의 정치역경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동정하기도 했으며 비난을 하기도 하는 등 갖은 애증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35세의 젊은 나이에 군사 쿠테타를 일으켜 권력 핵심부에 정착한 그는 중앙 정보부장, 공화당의장 등 권력의 제 2인자로서의 역을 수행했다. 가히 날으는 새도 떨어 뜨릴 수 있는 권력의 화신이었다. 잘 나가던 그도 김성곤, 길재호, 이후락 등 신진 권력그룹의 견제에는 당할 수가 없었다. 그는 이들에 밀려 국회의원직 등 모든 공직을 내놓고 ‘자의 반, 타의반’이라는 유명한 일화를 남기고는 외유를 떠났다.
그의 좌절은 여기에서 끝이지 않는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이후 공화당 총재가 되었으나 신군부에 의해 부정축재자로 몰려 재산환수를 당하는 등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다시 부활하는 오뚜기 정치인이었다. 1987년 공화당을 재건하여 총재가 되더니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였고 1990년 3당합당을 이끌어 내어 민자당 최고위원을 지냈다.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을 도와 총리를 맡고 자민련의원들이 입각하는 등 2인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했으나 개평정치인이라는 비난도 들었다.
자민련의원들의 탈당으로 원내교섭단체 의석수가 모자라자 민주당에서 의원 한 명을 빌려 오는 기상천외의 꼼수로 세상을 놀라게 하는 등 그의 정치역정은 영욕으로 얼룩졌다. 그러한 그가 연착륙에 실패하여 처량한 황혼을 맺게 됐다. 국회의원 낙선에 이어 검찰조사까지 받게 되었으니 말년에 망신살이 뻗친 셈이다. 滿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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