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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이팝나무꽃 단상(斷想)

요즘 도로변 어딜 가나 흰색 꽃잎을 머금은 가로수를 자주 만날 수 있다. 멀리서 보면 나무에 눈이 소복소복 쌓인 듯 탐스럽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영락없이 쌀밥을 수북이 뿌려놓은 모습이다. 이름도 이를 닮았다 해서 ‘이팝나무’다. 벼농사가 잘되면 쌀밥(이밥)을 먹는다고 해서, 또 입하(立夏) 무렵에 꽃이 피기 때문에 이팝이라 했다는 설(說)을 간직한 우리 고유 수종이다.

꽃이 얼마나 잘 피는지, 과거 이팝나무의 꽃피는 모습을 보고 한 해 벼농사의 풍흉을 짐작했다. 치성을 드리면 그해 풍년이 든다며 신목(神木)으로 받들었다. 이팝나무꽃은 모내기철이 왔음을 알리는 전령사 역할도 했다.

꽃이 피는 시기는 가장 배고픈 보릿고개 즈음이다. 춘궁기에 굶어 죽은 자식의 무덤가에 이 나무를 심어놓고 죽어서라도 흰 쌀밥을 마음껏 먹기를 비는 부모의 애틋한 마음이 담겨 있다. 그러니 그냥 꽃이 아니라 밥꽃이다. 오래된 이팝나무가 있는 마을마다 전해오는 이야기도 비슷하다. 생명력도 강하고 모양도 아름다워 곳곳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마을 보호수이기도 하다. 이맘때면 20일 이상 벚꽃보다 더 환하게 피고 은은한 향기를 내뿜는데다 질 때도 사방에 눈처럼 흩날리며 떨어져 장관을 이룬다.

어제가 여름으로 들어간다는 절기 입하(立夏)였다. 해마다 이 무렵이면 이팝나무뿐 만 아니라 갖가지 꽃들이 만개한다. 따라서 주변엔 푸르른 녹음과 꽃들이 지천이다. 꽃이 핀다는 것은 가을의 풍성한 결실을 의미한다. 또 꽃은 번영과 풍요, 재생과 영생, 미인과 여성과 아름다움과 사랑, 존경과 기원의 상징이기도 하다. 때론 간절하고 경건한 마음을 전하는 메신저로 나타나기도 한다. 모두가 꽃이 사람들에게 조건 없이 베푸는 ‘미덕’이다. 이러니 꽃을 사랑하지 않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 이팝나무 꽃을 보며 이러저런 단상에 젖는다. 과거 풍년을 기원하며 보릿고개를 넘으신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은 지금 어떠신지…. 덩그런 농가에서, 한적한 교외의 요양원에서, 도시의 쪽방에서 홀로 외로움과 싸우며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계시지는 않은지…. 내일이 어버이날이다.

/정준성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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