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0 (금)

  • 흐림동두천 21.9℃
  • 흐림강릉 24.0℃
  • 흐림서울 25.5℃
  • 구름많음대전 27.3℃
  • 흐림대구 25.7℃
  • 울산 23.0℃
  • 흐림광주 27.6℃
  • 흐림부산 23.3℃
  • 구름많음고창 28.7℃
  • 구름많음제주 26.5℃
  • 구름많음강화 23.1℃
  • 구름많음보은 25.8℃
  • 구름많음금산 26.6℃
  • 구름조금강진군 26.1℃
  • 흐림경주시 23.4℃
  • 구름조금거제 23.6℃
기상청 제공

[생활에세이]9월의 들녘

 

한낮, 뜨거운 태양아래 곡식 영그는 소리 탱글하다. 푸른 물이 빠지기 시작한 초목은 씨앗을 익히느라 분주하고 높아진 하늘과 달궈진 태양사이로 오가는 바람이 산뜻하다. 가을이 들어차고 있다.

태풍 링링에 쓰러진 벼들과 낙과한 열매들 그리고 가지 꺾인 나무 틈으로도 가을볕이 들어찬다. 쓰러진 벼를 보면 안타깝다. 나락이 영글기 전 쓰러진 벼는 상품 가치도 떨어질 뿐 아니라 수확도 어렵다고 하는데 저렇게 많은 벼들이 쓰러졌으니 농가의 시름을 감히 짐작할 수 있다.

우리도 작은 과수원이 있다. 이런저런 유실수가 있는데 태풍 지난 후 과수원에 나가보니 대추며 호두 그리고 감까지 시퍼렇게 쏟아졌다. 한 달은 족히 자라야 수확 할 과실들이기 때문에 지금 떨어진 것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나무를 올려다보니 훤하다. 대부분은 떨어지고 폭풍을 견뎌낸 열매들 몇 고요해진 바람에 젖은 몸을 말린다. 군데군데 찢긴 나무를 걷어내며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본다. 평온하기 그지없는 하늘이 야속하기만하다. 버리기엔 너무 아까워 대추를 두어 상자 주웠다. 딱히 어떻게 할 수도 없고 해야 한다는 목적도 없이 그냥 바닥에 나뒹구는 것이 아깝고 보기 싫어 주섬주섬 주워 담았다.

먹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풋감은 식초를 담그고 호두는 발로 비벼 껍질을 벗겼다. 돌아보면 지난 몇 년간 태풍이 비켜가서 수확을 잘 했다. 사과대추라 맛도 좋고 당도가 높을 뿐 아니라 크기도 커서 생과로 먹기에 적합한 대신 꼭지가 약해서 큰바람엔 영락없이 다 쏟아지는 단점이 있다.

일 년 농사를 하루의 바람과 맞바꾼다는 허망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다. 자연재해라는 위로 아닌 위로를 해보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하지만 어떡하겠는가. 농경을 업으로 하는 분들은 엄청난 피해를 감수하고 있는데 우리는 업은 아니니 피해를 봤다고 말하기도 미안하다.

계속되는 태풍의 경로와 바람의 세기를 보면서 기상청의 예보가 빗나가 주길 간절히 바랐지만 야속하게도 기상청의 예보는 적중했다. 농사의 절반은 하늘이 지어준다는 말이 실감나는 때이다. 태풍을 견딘 것들은 갈 볕에 빠르게 익어가고 우리네 식탁은 서서히 풍요로워 질 것이다.

몸통의 일부와 열매를 잃어버린 나무를 쓰다듬어 본다. 제 분신을 잃어버리면서 내지른 비명 또한 만만찮으리라 싶다. 이렇게 절기가 가고 계절이 바뀐다. 거리에 나서면 들꽃이 환하게 꽃잎을 흔들고 누릇해진 은행나무도 남은 열매를 키우며 다가올 계절을 준비하듯 어려움을 극복하고 또 다른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과수나무를 보면서 내년을 기약하는 일은 두렵다. 갈수록 기상이변이 잦아지고 그에 따른 피해와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부는 봄이 되고 나무에 새순이 올라오면 새로운 농경을 준비한다. 논을 갈아엎고 과수나무에 가지치기를 하고 모판을 만들어 볍씨를 뿌리며 새로운 희망을 심는 것이 농심이다. 아버지도 그랬고 아버지의 아버지도 그렇게 농경을 지켜왔고 또 그렇게 지켜갈 것이다.

9월의 들판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몇 안 되지만 남아있는 대추가 달궈진 햇살에 단내를 풍기며 익어가는 풍경들이며 꺾인 해바라기를 감아올린 나팔꽃이 귀를 활짝 열고 힘내라고 나팔을 부는 모습을 보며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법을 또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