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과 청와대의 이상기류가 간단치 않다.
분양원가 공개를 둘러싸고 노무현 대통령이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다"며 청와대의 뜻을 헤아리지 않고 총선공약으로 내건 당을 질책한 이후 곤혹스러운 처지에 몰렸던 우리당은 14일 중진들이 대거 나서 "(원가공개) 당 입장은 후퇴하지 않았다. 당.청간 치열하게 논쟁할 것"이라며 강하게 반론을 펴고 나섰다.
신기남 의장과 천정배 원내대표는 이날 아침 상임중앙위원회의에 앞서 약식 회의를 갖고 분양원가 공개에 대해 당이 후퇴하는 듯한 기조로 언론보도가 나온데 대해 불만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 측근이 전했다.
신 의장은 회의에서 비서진이 준비했던 원고를 제쳐놓고 이 문제에 상당부분을 할애했다.
그는 "정책에 관한 이견은 있을 수 있고, 어쩌면 필연적 과정이며 건강한 것"이라며 "그런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누구의 의견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이 국민을 위한 의견인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의견보다 국민을 생각하고 정책을 입안하겠다는 취지다.
그는 특히 "당정협조는 전혀 불안하지 않다. 올바른 결론을 내려 국민의 동의를 받을 자신이 있다"면서 "누구 말대로 청와대에 젖먹으러 가는 것이 아니다. 책임있는 여당으로서 국민여론을 전하러 가는 것"이라고 가시돋친 말도 쏟아냈다.
최근 문희상 의원이 신 의장의 주례회동 요구에 대해 "대통령과 당 지도부가 주례회동을 갖고 지시사항을 하달하거나 보고를 받아야한다는 것은 권위주의적 시대의 사고방식"이라며 "대통령도 젖을 주고 싶겠지만 당정 분리의 원칙을 분명하게 지켜나가겠다는 것"이라고 말한 것을 정면으로 반박한 셈이다.
천 대표도 이날 의총 인사말에서 "분양원가 공개를 하지 않기로 했다는 일부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며 "지난 토요일 당.청 협의에서는 공개를 할지, 안할지 그 내용은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면서 `당 입장 후퇴' 보도를 전면 부인했다.
당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NO'한 사안을 당.청이 협의한 것만으로도 상당한 성과로 봐야 하는 것 아니냐"며 "과거처럼 당이 청와대의 얘기 한마디에 그대로 머리를 조아리는 시대는 아니다"고 말했다.
그동안 현안에 대해 입장 표명을 삼가왔던 김근태 전 원내대표도 거들고 나섰다. 그는 "대통령 언급에 대해 개혁 후퇴라는 성토가 있고, 일부는 시장원리에 충실한 결정이라며 환영하고 있지만, 대다수 집없는 서민들의 경우 대단한 실망과 허탈감에 휩싸여 있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며 원가공개 입장의 정당성에 힘을 실어줬다.
특히 그는 "계급장을 떼고 치열하게 논쟁하자"며 "변화된 시대에서 기존의 당청 관계 역시 당연히 변화되어야 하며 치열한 논쟁을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당이 청와대에 주눅들 필요가 없음을 강조하는 것이며, 노 대통령을 겨냥한 발언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봉합돼 가는 듯하던 당.청 갈등이 다시 재연되는 듯한 기류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