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는 600년전 이성계 조선조 태조가 건설한 것이 기록상으로는 효시이다.
하지만 1천300여년전 개성이나 2천여년전 경주도 “도시계획에 의해 건설된 신도시라고 할 수 있다. 자연발생적 도시가 아니면 모두가 신도시인 셈이다. 그런데 수원시는 우리 조상들이 210년전에 맘먹고 건설한 현대적 의미의 신도시다.
옛날 도시의 필수적인 성곽(화성)을 축성하고 당시 도읍지 화산(용주사·융건능 인근)에 살던 주민들을 이주시킨 것이라던지 상인들을 모으고 대장간 등을 열게한 것은 지금의 자족형 신도시 건설 개념과 동일하다. 축성을 주도했던 정조는 효심도 작용했겠지만 서울을 방어한다는 국방개념이었다. 뚜렷한 신도시 건설 목적이 있었다.
광복이후는 성남시가 신도시 건설의 1호였다. 1969년께 청계천의 둔치와 천변에 널려있던 판자촌을 정비해야 겠다는 발상에서 비롯 됐다. 철거민들을 수용시킬 공간을 마련한다는 것이 성남이주단지였다. 신도시 건설 개념이 아니라 수용 개념이었다. 그러다 보니 편의시설은 말할 것도 없었고 행정지원 또한 변변치 못해 성남하면 살기 어려운 곳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76년도 안산 공업신도시 82년 과천 신도시 등은 정부의 면밀한 계획아래 건설 됐다. 성남이주단지와 달리 자족 기능을 갖춘 성공적인 신도시 건설이었다. 이후 주택난을 해결한다며 건설된 부천 중동·성남 분당·안양 평촌 등 10여개의 신도시는 베드타운 성격이었다. 자족형 도시는 구호 일뿐 아파트촌인 것이다.
엊그제 경기도가 동두천 미군기지 이전지역 등에 500만평 규모의 국제평화 신도시를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이제는 북부지역까지 아파트로 도배하게됐다. 즉흥적인 발상이 아니었으면 한다.
滿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