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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창(國唱) 이동백(李東伯)이 타계한 지 올해로써 54주기가 된다. 엊그제 평택 북부문예회관 소공연장에서 이동백 추모문화제가 있었다. 이동백은 2003년 문화관광부에 의해 ‘3월의 문화인물’로 선정되기도 한 소리꾼으로 우리나라 판소리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이동백은 1867년(고종 4) 충남 비인(庇仁)에서 태어났다.
그는 `6살 때 중고제의 명창 김정근과 동편제의 김세종에 사사(師事)하고, 45살 때 상경해 원각사(圓覺社)에 입사, 연흥사(延興社)·광무대(光武臺)·협률사(協律社)에 참가했다. 이때 송만갑(宋萬甲), 정정렬(丁貞烈)과 함께 조선성악연구회(朝鮮聲樂硏究會)를 설립하고 후배 양성에 힘 썼다.
특기는 심청가·적벽가이며 새타령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큼 빼어났다. 평소 판소리를 즐겨했던 고종은 이동백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공연장에 갈 수 없었던 고종은 이동백의 판소리를 듣기 위해 원각사에 전화기를 설치하고, 이동백의 생생한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고종은 이 때 이동백에게 당상관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 벼슬을 내렸다. 당상관 정3품은 당상인 관원으로 문관(文官)은 명선대부(明善大夫)·봉순대부(奉順大夫)·통정대부 이상이고, 무관(武官)은 절충장군(折衝將軍) 이상의 벼슬인 데 한낱 광대(廣大)에게 큰 벼슬을 내린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동백이 평택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현역에서 은퇴하면서 부터였다. 이동백은 지금의 평택시 송탄동(철원 2리)에 보금자리를 틀고 노후를 보냈는데 그는 은둔 중에도 날마다 북통을 둘러메고 철원리 뒷산에 올라 소리 사랑을 실천했다고 한다. 이동백 추모문화제 준비위원회는 그의 소리 정신을 기리기 위해 추모비와 판소리 전수관 건립을 준비 중이라니, 이는 판소리만큼이나 아름답다. 이창식/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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