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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박완서 선생과 트럭 아저씨

 

숲속 통나무의자에 앉았다. 편백나무 사이로 비껴드는 아침햇살이 금빛 비단 폭 같다. 날마다 보아도 늘 신비롭다. 숲속 아침 시간은 고요히 맑게 밝아온다. 내 문학의 뿌리 의식일까. 고인이 된 박완서 선생의 「트럭 아저씨」라는 수필이 떠오른다. 거기에 작가에 대한 답이 있어서일 것이다. 박완서 선생이 서울을 떠나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 때의 일이다. 매일 두 번씩 트럭에 채소를 싣고 오는 채소 장수 아저씨가 있었다. 멀리서 그 아저씨가 트럭에 싣고 오는 온갖 채소 이름 외치는 소리가 들리면 선생은 뭐라도 좀 팔아줘야 할 것 같아 마음보다 먼저 엉덩이가 들썩였다고 한다. 그 마음을 알아주는 채소 장수 아저씨는 손이 컸다. 그 때문에 선생은 “이렇게 싸요?” 하면, 물건을 사면서 싸다고 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는 듯 웃는다고 했다. 그렇게 정이 든 아저씨는 평일에는 하루도 거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동안 트럭 아저씨는 박완서 선생을 할머니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나타나서 새삼스럽게 존경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선생님’이라고 부르더란다. 순박한 감정에 곧이곧대로 나타낸 존경과 애정을 거부할 수 없어 선생께서는 “내 책을 읽어보았느냐?”고 물으니, 책을 읽은 게 아니라 TV에 나온 모습을 보았다고 하더란다. 이어서 신문 읽을 시간도 없다고 미안해하며 어려서 『저 하늘에도 슬픔이』 라는 책을 읽고 외로움을 달래며 많은 힘을 얻었다고 하더란다. 그리고 선생님도 『저 하늘에도 슬픔이』 같은 책을 쓰시라는 덕담까지 곁들이고 갔다고 했다. 박완서 선생은 어렸을 적에 읽은 책 한 권의 힘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온 중년 사내의 얼굴이 그렇게 부드럽고 늠름하게 빛날 수 있다면 그 책은 걸작임이 틀림없다 라고, 말하면서 그의 글 쓰는 사람에 대한 존경은 『저 하늘에도 슬픔이』에서 비롯된 것이 틀림없다고 했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라는 책은 초등학교 4학년 이윤복(1953-1990) 어린이가 쓴 일기다. 그 일기가 1964년 담임선생의 도움으로 출판되었다. 그 후 세 차례나 영화로 제작되어 큰 흥행을 이루기도 했다. 내용을 보면 이윤복 아버지는 노름판에서 돈을 다 날리고 허리 병까지 도져 일하러 나가지 못한다. 어머니는 어린 네 남매를 두고 가출해버리고. 네 남매 중 큰오빠가 누이동생과 함께 껌팔이하며 학교에 다니지만 일기는 빼먹지 않고 꼬박꼬박 썼다. 사실상 가장으로서의 소년 이윤복은 식구들을 챙기며 반듯하게 살아가는 실상을 고스란히 일기장에 새겼다. 충무공의 『난중일기』 같이.  


『저 하늘에도 슬픔이』라는 제목은 이윤복 학생 일기장에서 따온 구절이다. 책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영화도 대박을 터트렸다. 가마니때기로 바람을 막고 움막집에서 네 남매가 아버지까지 모시고 살아가는 고난사가 줄거리이다. 그런데 그 내용이 채소 장수 아저씨와 함께 그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 것이다. 그리고 열심히 살아가야 할 이유까지도 심어 주었다. 


작가는 어떤 사람이고 작가님은 어떤 분이어야 하는가! 꼭 걸작을 써야 작가님일까. 고인이 된 박완서 선생처럼 수줍은 미소를 지닌 어머니 같은 성품이어야 할까? 문학이란 그것이 간혹 절망을 노래할지라도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간의 행복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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