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비를 마련하겠다며 위험한 전장을 누비던 33세의 젊은이, 김선일씨가 잔혹하게 살해됐다. 더욱 원통한 것은 시신에까지 폭탄과 부비트랩을 두른 것이다. 시신을 수습하려는 무고한 사람을 해치려는 잔인한 반인륜적 범죄에 치를 떨 뿐이다. 따지고 보면 김씨는 우리나라 보통 젊은이의 패러다임이다. 그가 자란 가정도 그렇고 그의 꿈도 소박하기 이를 데 없다. 그가 친구와 교신한 인터넷을 보아도 우리 주위의 흔한 젊은이일 뿐이다. 부모를 생각하고 친구 형제 자매를 그리워 하는 마음, 우리 한국사람의 평균정서와 똑같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죽음을 더욱 애도하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간직했던 꿈을 이루어 보지도 못하고 꺾인 그의 영령에 고개를 숙일 뿐이다.
사실 김씨의 피살 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과 아쉬움을 남겨 주었다. 우선 정부의 정보부재다. 김씨의 피랍시점이 6월 17일에서 6월 18일로 우왕좌왕하다 이보다 훨씬 전인 5월 31일로 밝혀졌다. 김씨가 피랍된 이후 15일 이상을 정부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더욱 한심스러운 것은 AP 통신측에서 외교통상부에 피랍여부를 확인까지 했었는데도 몰랐다는 것이다. 21일 새벽 아랍권 위성방송 알 자지라 방송에 이어 진행된 정부의 구명운동은 어린이 병정놀이 수준이었다. 이미 상황이 끝난 뒤에 수선을 폈으니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정보부재의 산물이다.
자체적으로 확보한 정보망이 없이 귀동냥하는 수준의 원시적인 정보수집 수준이었다.
정부의 대응 또한 미숙했다는 평을 면할 수 없게 됐다. 인질석방 조건을 일언지하에 거절, 협상의 틈새를 스스로 줄인 것은 대응력 존재 여부를 의심케 한다고 하겠다.
물론 이라크의 테러집단이 제시한 조건이 들어줄 수 없는 것이고 시한 역시 협상할 의사가 없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보이지만 정부가 나서서 성급하게 결론을 낼 사항은 아닌 것이다. 인질 구출협상 및 작전의 기본조차 숙지 못했다는 지적을 면할 수 없게 됐다. 이밖에 협상창구의 혼선·범죄단체에의 접근 등 노출된 문제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이같은 모든 문제들이 반면교사다. 이번 일을 거울로 사건사고의 재발을 막아야 된다. 김선일씨를 위로하는 길은 이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