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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해변의 시

 

웃음을 잃어버린 사회가 되었다. 마음에 평안함이 없고 불안하다 못해 한숨짓는 사람이 많다. 코로나19로 그랬고 장맛비는 물 폭탄이 되어 온 국토가 처참한 재난지역으로 변하게 했다. 가난한 농민과 산촌 사람들과 가축들이 희생을 당한 채 넋을 잃고 하늘만 쳐다보게 하였다.

 

어떤 마음으로 기도해야 하며 무슨 공부를 하여 생활인으로서 건강한 삶을 되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이럴 때일수록 신뢰감 넘치고 듬직한 국가적 지도자가 그립다. 거기에 더 보탠다면 유머 감각도 있고 낭만적이라면 비단옷에 금무늬가 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 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영국의 처칠 수상의 현직 시절 이야기다. 그가 몇 개국 수뇌들과 회담 중 살짝 화장실에 가서 일을 보는데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들어와 갑자기 두 사람이 대면하게 되었다. 그 순간 처칠은 루스벨트를 향해 ‘대통령 각하 우리 대영제국은 모든 것을 숨김없이 각하에게 보여드리고 말았습니다’라고 말하여 두 정상은 크게 웃었다고 한다.

 

유머는 재치요 순발력이요 센스다. 인문학적 소양의 꽃이요 우리만의 풍류이다. 이럴 때일수록 “못생겨서 미안하다”는 코미디언 고 이주일 씨나 “요즘 왜 안 웃기느냐?”고 물어오는 국회의원에게 “우리보다 국회의원들이 더 웃기고 있지 않느냐”고 했던 전 아무개 코미디언이 생각난다,

 

그 해 그날, 나는 선유도를 가기 위해 군산항에서 배에 올라 좌석에 앉았다. 동행은 세 명이었다. 지역 문단 책임자이었던 J, O, S 시인이었다. 평소 글 농사 함께 짓는 이웃으로서 학인이요 동료 정신이 드는 사람들이었다.

 

식사는 서해안식당에서 즐겁게 먹을 수 있었다. J 시인 맥주 마시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황소 물 쓰듯 한다. 한창 술맛이 돋는데 갑자기 J 시인이 재채기를 한다. 옆의 O 시인과 함께. 실내를 두리번거리던 J 시인이 주인 여자에게 한마디 해댄다. “손님이 술을 마시고 있는데 주방에서 문을 열어놓고 양파를 까고 있으면 어떻게 되느냐?” 고. 주인아주머니 왈 “울 일 있으면 우시오. 바닷가에 왔으니께.” 나는 속으로 명언이다 싶었다. “울 일 있으면 우시오. 바닷가에 왔으니까.”

 

박지원(朴趾源)의 열하일기 호곡장(好哭場)이 번개같이 스쳤다. 좁은 팔도를 벗어나 천지가 맞닿은 듯 하는 중국의 요동 벌판을 바라보며 연암 선생이 했다는 명대사다.

호곡장(好哭場) 가이곡의(可以哭矣)로다. 좋은 울음 터다. 가히 한바탕 울어볼 만하구나./ 난 세상을 알 만큼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저 끝없는 지평선 앞에서/ 난 울고 말았네./ 막 태어난 아이처럼 모든 것이 / 낯설어 보여서/ 더는 누를 의지 없이/ 목 놓아 크게 울고 말았네 / …

연암은 천고의 영웅들은 모두 잘 울었고 미인들은 눈물이 많았다고 했다. 슬픔도 울음이 되지만 기쁨도 울음이 된다고 했다. 감동과 희망이 넘치는….

 

박지원과 같이 사나이 대장부는 아니어도 바다를 요동벌 삼아 한번 울어볼 만할까! 작은 나라 백성으로서 그 너른 벌판 앞에 기죽지 않고 차라리 울어버리는 게 간 큰 사람의 태도가 아닐까. 우리 또한 양파의 매운맛에 콜록거린다기보다 밀려오는 파도 앞에 속세와 재난의 때를 벗어버리고, 한잔 술에 크게 울어버리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바다 빛 푸르고 파도는 저음인데 선유도에서 쓸 시간도 다 되어갔다. 이별을 고한다는 게 어디 사람들뿐이랴. 군산으로 가는 쾌속선에 올랐다. 그런데 “울 일 있으면 실컷 우시오. 바닷가에 왔으니께”하던 야무진 식당 아주머니의 언어가 자꾸만 떠올랐다. 해변의 시(詩)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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