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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써 을사보호조약(乙巳保護條約) 체결 99년 째가 된다. 1905년(광무9) 11월 17일 조약 체결과 함께 우리나라는 외교권 등을 일본에 넘겨 주고 주권국가로서의 권리를 포기했다. 이 조약을 주도한 것이 박제순(朴齊純), 이지용(李址鎔), 이근택(李根澤), 이완용(李完用), 권중현(權重顯)으로 이른 바 을사오적이다. 이때 죽음을 각오하고 고종에게 상소를 올린 것이 면암 최익현(崔益鉉)이다. 상소문 요지는 이러했다. “신(臣)이 듣건대 일본군사령관의 고시에 따라 경내(境內)의 경찰관을 그들이 차지한다 하오. 도대체 우리나라의 경찰과 법무(法務)는 무엇을 하는 것이 오니까. 500년 종사(宗社)와 삼천리 강토가 하루 아침에 일본에 먹힌 것을 동탄하오. 근자에 듣자하니 폐하께서는 대낮에 침전(寢殿)에 드신다 하오니 이는 음양(陰陽)을 어긴 것이오. 전과 같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조참(朝參)과 상참(常參), 차대(次對)와 운대(輪對) 등을 하시와 신하들과 번번히 백사(百事)를 의논 하심이 옳을 듯하오.”
감히 신하를 자처하는 선비로서는 입밖으로 하기 어려운 말들을 그는 해냈다. 예나 지금이나 바른 말 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군왕을 신격시하던 왕조시대에 임금의 허물을 낱낱이 지적해 가며 선정을 간청한 것은 목숨과 바꾸는 일과 다름이 없었다. 그후 면암은 쯔시마로 압송돼 열흘동안 절식(絶食) 한끝에 순사했지만 그의 고고한 애국혼은 영원히 살아있다.
상소문에 나오는 조참은 매달 4차례 정전(政殿)에 나가 백관의 계사(啓事)를 듣는 일이고, 상참은 중신들이 날마다 보고하는 정사를 듣는 일이다. 또 차대(次對)는 매달 6차례 의정·대간·옥당 등이 입시하여 정무를 보고 하는 일이고, 윤대는 매달 각 지방장관들이 3차례 임금께 직무 보고를 하는 것이었다. 백년을 돌이켜 보면서 심통(心痛)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창식/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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