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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도서정가제는 출판계 산소호흡기…손대지 말아야

책값을 종잇값으로만 여기는 천박한 인식이 문제

  • 등록 2020.10.08 06:49:11
  • 13면

정부가 기존의 도서정가제(도정제) 기준을 완화하려는 방향의 개편 움직임을 보이자 출판사와 서점단체 등 출판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도서정가제는 모든 책에 정가를 표기하고 할인율을 최대 15%로 제한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그런데 정부가 이 기준을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출판업계에 이어 서점계도 ‘문화 생태계’ 훼손을 우려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출판계의 절실한 산소호흡기인 도서정가제를 개악해서는 안 된다. 도정제는 독일, 프랑스, 일본 등 많은 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제도로서 한국은 2003년 처음 도입했다. 2014년 법 개정을 통해 현재는 신·구간 구분 없이 모든 도서를 최대 15% 내에서만 할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완전한 정가제가 아닌 ‘도서 가격 할인 제한제’라고도 불린다. 다른 공산품에는 없는 정가제를 법률로 만든 것은 ‘사회적 공공재’인 책의 유통 혼란을 막아 저자·출판사·서점을 보호·육성하겠다는 취지다.

 

도정제는 시행 6년 차를 맞은 지금 안착 단계에 접어들었다. 서점 등 유통시장은 발행 18개월 이내의 신간 중심으로 재편됐다. 발행 종 수가 늘면서 신간이 베스트셀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함께 높아졌다. 2014년 이후 동네 책방의 맥을 잇는 독립서점은 2015년 97곳에서 2019년 551곳으로 6배 가까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단행본 출간 종수도 50%나 늘었다. 그만큼 다양한 콘텐츠들이 생산되었다는 의미다.

 

도정제 타당성 검토를 위해 지난해 7월 출범한 민관협의체는 1년간 16차례 회의를 통해 현행 틀을 유지하는 것으로 합의안을 도출했다. 그런데 최근 문체부가 민관 합의안을 뒤엎고 장기 재고 도서와 웹 소설의 도서정가제 제외, 전자책 20~30% 할인 등의 방안을 제시하면서 상황이 급반전했다. 출판계는 뒤통수를 맞은 듯 당혹해하고 있다.

 

문체부의 안대로 도정제가 개정된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우선 신간은 사라지고 구간 할인도서가 득세할 것이다. 전집류나 스테디셀러 목록을 많이 가지고 있는 일부 대형 출판사만 혜택을 보고 소형 출판사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전자책 할인 폭 확대는 도정제 자체의 붕괴를 초래할 수도 있다.

 

할인 폭이 늘수록 영세한 동네 책방보다 10~20% 싸게 많은 물량을 받는 대형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의 쏠림 현상도 심화할 수 있다. 한국출판인회의와 한국작가회의는 한국의 작가 10명 중 7명은 현행 도서정가제가 유지되거나 강화돼야 한다는 입장이라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16년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는 이 자리에서 “도정제가 사라진다면 태어날 수 있었던 수많은 책이 죽음을 겪게 될 것”이라면서 “(미래) 독자가 될 어린 세대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미친다”고 우려했다.

 

문체부가 현행 도정제를 ‘개악’하려는 배후를 놓고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20만 명이 동의한 ‘청와대 도정제 폐지 국민청원’이 작용했다는 해석도 있지만, 이는 책값을 단순히 종잇값으로나 여기는 천박한 군중의식의 발로여서 설득력이 없다. 청원의 배경에는 양서 발간, 지역 서점 보호와 같은 출판의 공공성이 전혀 없다. 약자를 죽이고 강자만 이득을 볼 게 뻔한 도정제 개악에 정부는 더 이상 집착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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