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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스타의 스타트랙] 과정과 진화

 

언젠가 모 대학의 신입생을 상대로 한 강연을 부탁받아 다녀왔다. 의뢰를 받고 나서 갓 대학에 입학한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며칠 밤을 고민했던 것 같다. 내가 저 나이로 돌아간다면 어떤 삶을 살 것인지 또 지금에 와서 보면 여태까지의 나는 어떠했는지에 대하여 깊은 생각에 빠졌다. 

 

강연 날 강당에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색한 분위기의 오프닝이 지나고 그 자리가 편해졌을 무렵, 그곳의 학생들에게 꼭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그중 내가 가장 힘을 주어 당부했던 대목은 “지금 손에 잡고 있는 꿈의 가지를 하나라도 쉽게 놓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살면서 선택과 집중을 하지만, 그 상황과는 별개로 꿈이라는 것은 충분히 꾸고 담아두어도 좋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고등학교 시절 같이 음악을 듣던 친구가 있다. 그 녀석과는 한 번도 같은 반이 된 적이 없었지만, 록 음악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꽤 자주 어울렸다. 당시 주변의 록 음악을 듣는 친구 중 대부분은 헤비메탈이나 얼터너티브 록을 많이 들었지만, 이 친구는 특이하게도 올드 록이나 프로그레시브 음악을 주로 선호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등학생이 어디서 그런 정보들과 음반을 구해서 들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비교적 최근까지 2G 폴더폰을 썼을 정도로 컴퓨터나 인터넷 등과는 친하지 않은 녀석이기에, 아마 발품을 팔아 해외 잡지를 찾아보고 뮤직비디오를 상영해주던 카페 등을 들락거리며 나름 열의를 갖고 음악을 찾아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당시 인기가 많았던 록 밴드 미스터 빅(Mr. Big)의 기타리스트 폴 길버트(Paul Gilbert)가 쓰던 흰색 아이바네즈(Ibanez) 일렉기타를 가지고 있었는데, 어디서 배운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꽤 괜찮은 연주를 들려주곤 했다. 

 

이윽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고 나의 경우처럼 당연히 대학 진학과 동시에 밴드를 시작 할 줄 알았지만, 녀석은 예상과는 다르게 음악 감상 동아리에 들어가 더욱 충실한 리스너의 길로 들어섰다. 그 후에도 기타를 짬짬이 치는 듯 보여 몇 번 불러내 같이 합주도 해봤지만 계속 지속되지는 않았다.

 

학교 졸업 후 녀석은 전공과는 무관한 일을 해오다 어느 날 내게 제안을 하나 해왔다. 같이 ‘음악 치료사’ 과정을 공부하자는 것이었다. 관심은 있었지만, 당시 나는 밴드 활동으로 바빴기에 같이 하지 못했고, 그 친구 홀로 정식 과정을 밟아 졸업 후 현재까지 음악 치료 및 상담 치료사 일을 하고 있다. 종종 상담하는 일이 생각보다 힘들다고 하소연하지만, 적성에는 잘 맞는 듯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앨범을 냈다는 것이었다. 만나 이야길 들어보니 그간 시간을 쪼개 곡도 쓰고 녹음도 하고 그래왔다고 한다. 또 완성되는 대로 한두 곡씩 디지털 싱글로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곡의 완성도 그리고 연주와 사운드의 퀄리티를 이야기하기 전에 그간 음악이라는 끈을 놓지 않고 살아온 모습에 놀랐다. 집안 작은방에서 음악을 듣고 기타를 튕기던 고교 시절 녀석의 모습이 오버랩 되어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투박하게나마 한 곡 한 곡 녹음하며 완성하는 과정이 음악 치료사의 자가 치료라고 생각하니 왠지 근사했다.

 

녀석은 여전히 꿈을 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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